[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한국 록의 전설’ 송골매가 38년 만에 힘차게 날아올랐다.
11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KSPO 돔(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는 원년멤버 배철수(70, 기타·보컬)와 2집부터 전성기 중추였던 구창모(69, 보컬)를 중심으로 전국 투어 콘서트 ‘열망(熱望)’이 첫 발을 뗐다. 전국 주요 도시(광주, 대구, 부산 등)와 내년 3월 미국 투어(LA, 뉴욕, 애틀랜타)의 출사표이기도 한 이번 무대에서, 두 사람은 왜 송골매가 산울림과 함께 7080 한국식 그룹사운드의 원형이며, 역사였는지를 여실히 증명했다.
이날 저녁 7시, 입장곡으로 딥 퍼플 'Smoke on the Water'가 끝난 뒤 암전, 곧이어 3개의 대형 LED 화면에 '그때 그 시절' 감성 영상이 묻어나왔다. 플레이어에 걸려버린 카세트 테이프를 낑낑대며 푸는 전파사 직원의 연기에 여기저기 웃음이 터져나왔다. 브라운관 TV 디자인의 배경 화면과 복고풍 의상..., 그리고 벤츠 자동차가 구식 디자인으로 바뀌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뛰어들 때, 무대 양쪽 송골매 상징인 대형 날개에 흰색 조명이 켜지며, 9500여석을 채운 관객들이 함성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송골매 '열망' 콘서트. 사진=드림메이커 엔터테인먼트
찢어진 청바지, 가죽 재킷 차림의 배철수와 유려한 미성의 구창모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른 듯 했다. 1980년대 활동 당시 기성 가요계와 방송사의 경직된 문화를 타파한 록 밴드이자, 자유로운 청년문화의 표상, 그대로 무대에 섰다. 이날 두 멤버는 고령의 나이에도 2시간 가량 총 26곡을 소화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2집, 1982)'와 '모여라'(9집, 1990)' 같은 대표 히트곡들로 시작해 역사를 되짚어 갔다.
1978년 두 사람이 첫 인연을 맺게 된 곡 '구름과 나는'(TBC 제1회 '해변가요제'에서 이 곡을 부르는 '블랙테트라'의 구창모를 보고 당시 '활주로'로 활동하던 배철수가 훗날 '송골매' 2집에 제안) 같은 곡부터 활주로 시절의 곡들('처음부터 사랑했네'·'세상 모르고 살았노라')과 송골매 시절의 대표곡들을 차례로 이어가며 기승전결식 무대를 꾸몄다.
'사랑하는 이여 내 죽으면(9집, 1990)'은 송골매 시절 음반 녹음 후 이번 무대에서 라이브로 처음 선보였다. 영국의 여류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가 발표한 같은 제목의 시(詩)를 읽다 영감을 받아 쓴 곡. "제가 그 당시 영미 고전 시집 같은 걸 많이 읽었는데요. 이 책은 이상하게 슬프더라고요. 갑자기 멜로디가 떠올라서 붙여 만든 곡입니다."(배철수)
오리지널과 100% 똑같은 편곡이지만, 베이스 이태윤(송골매 7~9집 베이스) 공연 총괄 음악 감독을 비롯해 추가 2대의 기타(전달현·이성열)와 3대의 키보드(박만희·안기호·최태완), 드럼(장혁), 코러스(이서종·김지숙) 등이 꽉 채운 무대가 라이브 사운드를 풍성하게 느껴지게 했다. 구성진 배철수의 목소리에, 한국적인 록 사운드가 뿜어지는 '하늘나라 우리님(5집, 1985)'부터 '세상만사(1집, 1979)'로 이어지는 순서 때는 두 사람을 태운 무대가 1층 객석 끝까지 이동하며 관객과 호흡하는 연출이 특기할 만 했다.
'새가 되어 날으리(7집, 1987)'에서 모두 일어난 청중들이 제창을 하자, 화면 뒤 송골매가 비상하며 도시를 굽어봤다. 이후 앙코르 곡 '모두 다 사랑하리(2집, 1982)'까지, 마친 두 사람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이런 날이 오리라곤 생각 못했는데 기적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그런 순간이었습니다."(배철수) "살이 떨릴 정도로 흥분하다 보니 박자도 놓쳤던 거 같네요. 이런 큰 무대에 설 줄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감사합니다."(구창모)
12일 오후 5시, 서울에서 추가 공연을 연다. 이후 전국투어와 내년 3월 미국 투어를 이어간다. 배철수에 따르면 송골매의 잠정적인 마지막 공연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마지막 앨범을 투어 끝나는 시점에 내고 송골매 활동을 종료할 계획이다.
배철수, 구창모 주축의 밴드 송골매 공연 '열망'. 사진=드림메이커 엔터테인먼트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