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정진석 비대위'가 13일 닻을 올렸다. 지난달 26일 주호영 전 비대위원장 직무정지 이후 19일 만의 새 비대위다. 이날 오전 비대위원 인선을 발표한 지 1시간30분 만에 주기환 비대위원이 사의를 표명하고 전주혜 의원으로 교체되는 등 시작부터 삐걱댔지만, 상임전국위원회까지 무사히 통과했다. 하지만 최대 관건은 법원이다. 이준석 대표가 새 비대위에도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하면서 법원의 손에 집권여당 운명을 또 다시 맡기게 됐다.
국민의힘 윤두현 상임전국위원회 의장 직무대행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8차 상임전국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은 이날 오후 상임전국위원회를 열고 정 위원장이 지명한 '비대위원 6명' 임명안을 가결했다. 윤두현 상임전국위 의장 직무대행(부의장)은 "상임전국위원 53명 중 39명이 참여해 성원이 됐고 그중에서 반대는 1명으로, 비대위원 임명안이 원안대로 가결됐다"고 말했다.
관심을 모았던 비대위원에는 3선 김상훈 의원(대구 서구), 재선 정점식 의원(경남 통영·고성), 윤석열 캠프 대변인을 맡았던 김병민 서울 광진갑 당협위원장, 김종혁 혁신위 대변인, 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 전주혜 의원이 포함됐다. 비대위는 당연직인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등 3인을 더해 총 9명으로 구성됐다. 혁신위원장인 최재형 의원 등에게도 합류를 제안했으나 또 다시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와 비대위 논란이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비대위는 친윤 색채가 한결 짙어졌다. 정 위원장부터 친윤으로 분류된다. 이준석 대표는 정 위원장을 '윤핵관 호소인'으로 지칭, 조롱하기도 했다. 김상훈·정점식 의원도 친윤계로 분류되며, 이중 정 의원은 앞서 안철수 의원이 국민의당 몫으로 지명한 최고위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지만 최고위 합류는 불발됐다. 김병민 당협위원장은 지난 대선 캠프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대변인을 맡았다. 주기환 전 광주시장 후보는 지역 안배 차원에서 호남 몫으로 배정되며 1차 비대위에 이어 2차 비대위에도 합류했지만, 친윤 인사라는 지적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2003년 광주지검에 근무할 당시 검찰 수사관으로 일하면서 윤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또 아들이 대통령실 6급으로 근무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의 사의로 빈 자리에는 연고지가 광주인 전주혜 의원이 투입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7일 오후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사건의 심문을 마친 후 법원을 빠져나오고 있다.(사진=국회사진기자단)
어렵사리 정진석 비대위가 구성을 마치고 출범했지만 앞날은 험난하다. 역시나 걸림돌은 이준석 대표와의 법적 싸움이다.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재판장 황정수)는 오는 14일 오전 11시 이 대표가 제기한 전국위원회의 당헌 96조 개정 의결 효력정지 가처분 심문을 진행한다. 이 대표는 지난 1차 가처분 심문 당시와 마찬가지로 이날 법원에 직접 출석해 소명한다. 이날 법원에서는 주호영 전 비대위원장이 1차 가처분 판결에 불복해 제기한 이의신청도 함께 열린다.
다만 이 대표가 제기한 4차 가처분 신청에 관한 심문기일 변경 신청이 재판부에서 받아들여지면서 '정진석 비대위'의 시간은 늘어났다. 국민의힘은 "소송대리인 선임 및 종전 가처분 사건과 다른 새로운 주장에 대한 답변서 작성 등 심문을 준비하는데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기일 변경 신청서를 제출했다. 해당 심문은 오는 28일 오전 11시로 변경됐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열리는 날로, 이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가 논의될 수 있다. 앞서 국민의힘은 의원총회를 통해 '양두구육·신군부' 발언 등으로 문란을 일으킨 이 대표에 대한 추가징계를 요청했고, 윤리위는 이를 존중한다며 추가징계를 시사했다.
앞서 법원은 지난달 26일 이 대표가 국민의힘과 주호영 전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1차 효력정지 가처분을 일부 인용했다. 이에 따라 주 전 위원장의 직무가 즉시 정지됐다. 이후 국민의힘은 당헌 96조 개정을 통해 문제가 된 '비상상황' 요건을 명확히 규정하는 등 새 비대위 출범을 위한 절차적 하자 해소에 나섰지만 '소급적용' 불씨를 남기게 되면서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법조계에서는 같은 재판부가 판결한다는 점 등을 근거로 다시 인용될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 대표도 심문기일 연기 요청을 예상하며 "뭘 생각해도 그 이하"라고 승리를 자신했다.
이에 새 비대위마저 출범과 동시에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2차 비대위마저 엎어지면 권성동 원내대표 사의 표명으로 새로 선출하게 될 원내대표 선거도 난항에 직면하게 된다. 지난 12일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서둘러 비대위를 구성해야만 차기 원내대표 선출 일정을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당헌·당규상 원내대표 선거관리위원회가 출범해야 하는데, 원내대표 선관위는 당대표가 최고위원들, 비대위원들과 협의해서 선관위를 구성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비대위가 출범해야 그 다음 일정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집권여당의 지도부가 사실상 두 달 넘게 공백 상태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