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이 오는 19일 치러질 예정인 가운데 이로 인해 오는 27일 열리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국장(國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아베 전 총리의 국장 명분으로 내세웠던 '조문 외교'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으로 인해 빛이 바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애초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대해서 일본 내부에서도 반대 여론이 높았다.
일본 공영방송 NHK가 9∼11일 유권자를 상대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는 국장 결정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57%)는 반응이 긍정적 평가(32%)의 두 배에 육박했다.
또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2~4일 유권자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아베 전 총리 국장에 대해 '반대한다' 56%로 ‘찬성한다' 38%를 크게 웃돌았다.
일본 국민 절반이 아베 전 총리 국장을 반대하는 이유는 첫 번째로 세금 문제다. 일본 정부는 지난 6일 뒤늦게 국장 총 비용으로 16억 6000만엔(약 162억원)이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이는 역대 일본 총리의 장례식으로는 가장 큰 비용이다.
또 아베 전 총리와 그가 소속된 자민당이 통일교(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와 유착 관계가 있다는 정황이 나오면서 국장을 치를만한 자격이 되냐는 내부 지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해당 의혹은 아직 명확하게 풀리지 않은 상태다.
여기에 영국에서 압도적인 추모 분위기 속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이 치러지면서 일본 국민들의 국장에 대한 회의감은 더욱 커진 것으로 보인다. 일본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장례식이야 말로 진짜 국장'이라며 '진짜 국장'(本物の國葬) 해시태그를 단 글이 퍼지고 있다.
특히 한 일본인 트위터 이용자는 "이제부터 영국에서 진짜 국장(國葬)이라는 것이 실시되게 될 것"이라며 "지금 이 나라 국민의 반수 이상이 회의적인 국장이 어떻게 보이게 될 것인가"라고 적었다.
앞서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을 결정한 이유로 제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을 재건했다는 공과 더불어 '조문 외교'를 내세운 바 있다. 아베 전 총리가 일본 최장수 총리를 지냈던 만큼 장례식에 각국 정부가 고위급 조문단을 파견할 것이고, 이를 계기로 도쿄에서 '조문 외교의 큰 장'이 열린다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국왕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한 후 장례식 일정이 19일로 잡히면서 모든게 꼬이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전 세계 각국 정상들이 19일에는 런던에, 그 다음 날인 20일에는 미국 뉴욕에 열리는 유엔 총회로 집결한다.
이에 따라 27일 열릴 예정인 아베 전 총리 국장에 대한 명분이 크게 흔들리게 됐다. 각국 정상들은 19일~20일에 이미 '조문 외교'를 전개한 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서 기시다 총리는 중의원에 출석해 미국 해리스 부통령, 캐나다 트뤼도 총리, 인도의 모디 총리, 호주 앤서니 총리, 싱가폴 리센룽 총리, 베트남 응우옌 주석 등 국가 정상급 조문객은 5명 정도 참석할 것이라 밝혔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불참하기로 했다.
반면 여왕의 장례식에는 주요 국가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상대적으로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은 초라하게 보일 것은 자명하다. 이렇게 되면 '통일교 스캔들'로 흔들리고 있는 기시다 내각은 '아베 국장'으로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