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젠은 지난 2020년 5월4일 주식거래 정지 대상에 올랐다. 이유는 문은상 전 대표 등 당시 경영진의 횡령과 배임이다. 2016년 코스닥에 상장한 지 약 4년 만이다.
거래정지의 원인이 된 당시 경영진의 횡령·배임은 2013년부터 2014년에 걸쳐 이뤄졌다. 신라젠이 상장하기 3~4년 전의 일이다.
이후 문은상 전 대표 신변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1심에선 징역 5년형과 벌금 350억원을 선고했다. 2심은 징역형은 그대로 두고 벌금만 10억원으로 줄였다. 대법원은 1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거래 재개 여부는 다음달 12일 결정된다. 코스닥시장위원회는 △상장유지(거래 재개) △상장폐지 △심의 속개 △개선기간 부여 등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른다. 코스닥시장위 결과 신라젠 거래가 재개되면 상장적격성 실질 심사 사유가 발생했다는 한국거래소 판단에 따라 주식거래가 정지된 지 약 2년5개월이 지나서야 최종 결론을 맞게 되는 것이다. 반면 지금처럼 거래 정지로 결론이 나면 신라젠 주식거래는 약 3년에 걸쳐 막힌다.
새 주인을 맞은 회사는 회사 사정에 맞게 신규 후보물질 도입을 추진하는 등 회생 노력을 이어갔다. 거래소에 개선계획 이행내역서를 제출했고, 계획에 따른 개선 의지를 보인 만큼 거래 재개를 자신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신라젠에 발이 묶인 주주들 사정은 다르다. 투자를 결심했을 때는 알 수도 없었던 비상장 당시의 일로 거래소 철퇴를 맞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거래 재개와 상장 주관사의 사과와 보상을 촉구하는 집회만 지속해 벌이고 있다.
주주들의 주장은 이렇다. 잘못은 당시 신라젠 경영진과 상장 주관사에 있는데 벌은 자신들이 받고 있다는 것. 바이오기업 중 상장 전에 있었던 경영진의 불법 행위로 거래가 정지된 유일한 사례라는 울분 섞인 호소도 들을 수 있다.
거래정지 기간이 길어지면서 주주들의 울분은 거래소에도 닿게 됐다. 이들은 문은상 전 대표와 상장 주관사가 짬짜미해 자금을 굴린 일이 거래 정지 사유였다면 이를 꼼꼼히 따지지 않은 거래소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힐난을 아끼지 않는다.
거래소 입장은 다르다. 신라젠이 제출한 자료를 면밀히 검토해 상장을 결정했고, 상장 이전에 있었던 행위를 검증할 수 있는 수사권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는 반응인데, 이성호 신라젠 행동주의 주주모임(주주연대) 대표가 들었다는 거래소 답변이다.
기업의 유가증권시장 상장은 투자자의 자금으로 기업 활동을 영위하고 이를 통해 얻은 수익을 주주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거래소는 건전한 시장 분위기를 형성하고 공정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거래소가 이런 중대한 역할을 맡은 점을 감안하면 검찰처럼 수사권이 없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사기업이면서도 국가기관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진 거래소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거래소가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손에 쥔 권력만 행사하는 동안 개인투자자들은 하릴없이 2년 넘는 시간을 길에서 보내게 됐다. 17만명에 달하는 주주 운명이 달린 판단에는 마땅한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책임 없이 권한만 누린다면 아무 것도 모르고 신라젠에 투자한 주주들 피만 말리는 꼴이 아니겠는가.
산업2부 동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