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한일회담, 결국 약식으로?…조급외교에 주도권만 내줬다

외교장관 회담 통해 정상회담 의제 조율…최소 '약식회담' 성사
거듭된 조급함 노출…과거사 해법 도출 어려울 듯

입력 : 2022-09-20 오후 3:55:02
지난 7월29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이 마드리드 이페마(IFEMA)에서 열린 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한일 외교장관이 19일(현지시간) 회동을 갖고 강제징용 등 양국의 과거사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양국 정부가 정상회담을 앞두고 장관들이 만난 것이어서, 한일 정상회담이 약식으로라도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회담으로 얻을 실익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핵 문제 등 안보 현안에 대한 논의로 의제가 국한되면서 강제징용 해법 등은 이번 회담에서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오히려 이번 회담 일정 조율 과정에서 회담을 성사시키려는 정부의 조급함이 노출돼 일본에 외교적 주도권만 내주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0일 외교부에 따르면, 박진 장관은 제77차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대신과 19일(현지시간)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가졌다. 양국의 외교장관이 만난다는 건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사실상 마지막 조율이라는 점에서 유엔총회에서 최소 약식 회담을 열 가능성이 높아졌다. '약식 회담'은 시간이 짧고 형식이 자유로운 이른바 '풀 어사이드'(pull aside) 회담이다. 우리정부 기대대로 정식 양자 정상회담을 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다만 현재까지 양국 모두 정상회담 구체적 일정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 장관은 회담 직후 취재진의 관련 질의에 즉답을 피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출국 전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현재 일정은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앞서 유엔총회에서 한미, 한일 정상회담을 확정해 발표했다.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유엔총회에서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며 "시간을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미,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빡빡한 일정 때문에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얼굴을 마주 보고 진행하는 회담이 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해선 "서로 이번에 만나는 것이 좋겠다고 흔쾌히 합의됐다"고 전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달 31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대면 기자회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우리정부가 정상회담 추진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을 때 일본 정부는 자국 언론을 통해 불쾌감을 내비쳤다. '산케이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한국 정부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발표를 해 일본 정부가 한국 쪽에 항의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의 일방적 발표에 대한 반감을 표시한 것이다. 통상 정상회담은 양국이 동시에 발표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이번 회담은 우리 정부의 단독 발표였다. 이후 우리 정부는 정상회담 개최 여부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공식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한일 정상회담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 말 스페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 때도 박진 장관이 정상회담 준비 등을 위해 일본 방문을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사전에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이뤄지지 못하면 의미 있는 정상회담으로 이어지기가 어렵다. 결국 양자 정상회담은 무산됐고, 약식 회담으로 대체됐다. 당시 한일 정상은 만찬 자리에서 약 4분 동안 만나 가벼운 인사 정도의 대화를 나눴다.
 
무엇보다 이번 논란으로 우리정부가 회담에 조급하게 매달리고, 일본 정부는 아쉬울 게 없다는 모습이 확연해졌다. 그동안 정부의 기대감과 달리 일본 정부는 정상회담과 관련해 일관된 태도를 보여왔다. 양국의 최대 난제인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한국이 먼저 '해결책'을 들고 오라는 일방적 주문으로 받아들여졌다. 우리정부로서는 한일 정상 간 공식 회담이 2019년 12월 이후 2년9개월 동안 열리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먼저 회담을 성사시키는 것만으로도 한일관계 개선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 그동안 회담 추진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위안부 합의 파기 문제 등에 대한 구체적 언급 없이 한일관계 개선 의지만을 강조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일본을 "세계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으로 규정했다. 이어 "한일 관계가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양국의 미래와 시대적 사명을 향해 나아갈 때 과거사 문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고 했다. '미래'와 '시대적 사명'이 '과거사 해결'에 우선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결국 우리정부의 조급한 속내를 드러낸 채 외교에 임한 꼴이 됐다.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등에 대한 우리정부의 '선 해결'을 계속 요구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한일관계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하고 과거사 현안도 일본의 입장에 맞춘 해법으로 접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과거사 현안 협상과 관련한 우리정부의 선택지가 좁아지면서 일본에 외교적으로 주도권을 내주게 됐다.
 
박진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대신이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윤석열정부가 한일 정상회담에 집중하고 있는 데에는 과거 한일관계 개선에 자신감을 보였던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 여파로 분석된다. 또 한일관계 개선을 통해 지지율 상승을 이뤄내려는 의도도 있다는 분석이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우선 (윤 대통령이)한일관계를 개선한다고 공약했기 때문에 이러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라며 "또 현재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정상회담 성사로)지지율을 상승시키겠다는 생각도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일 정상회담이 정식 또는 약식으로 성사되더라도 기대만큼의 실익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략 30분이라는 한정된 시간 내에서 강제징용 등 과거사 현안에 대한 해법이 도출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강제징용 해법까지 논의하기에는 시간적으로 어렵다"며 "양국 정상이 관계 개선의 의지를 확인하고, 북한의 최근 핵 법제화에 대해 함께 대응해 나가겠다는 것에 대한 합의 정도만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북한 문제와 연동해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정상화시키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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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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