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준익 기자] 차량 공급 부족에 따른 '카플레이션(자동차 가격 인상)'과 신차 출고 지연으로 자동차 구매 의향이 크게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시적일 것 같던 자동차 생산 문제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면서 자동차 소비 심리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24일 컨설팅 기업 한국딜로이트그룹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들의 지난 8월 기준 자동차 구매의향이 최근 1년 중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딜로이트가 개발한 '자동차 구매 의향 지수(Vehicle Purchase Intent·VPI)'는 85.7을 기록했다. 지난해 9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딜로이트의 VPI 지수는 향후 6개월 이내에 자동차를 구입할 의향이 있는 소비자 비율을 추적해 산출하며 지수는 100을 기준선으로 강약을 판단한다. 7월 119로 고점을 찍었지만 8월에 뚝 떨어지며 구매 의욕이 급격히 약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자동차 산업은 코로나19로 인한 공급 부족, 차량 가격 상승 등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봉쇄로 인해 자동차 생산이 중단됐고 생산 재개 이후에는 반도체 부족 사태가 벌어졌으며 결과적으로 세계적인 공급망 병목 현상이 심화됐다.
현대차 아이오닉 5.(사진=현대차)
공급 문제뿐 아니라 자동차 수요는 향후 계속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갈등 등 지정학적 불안과 사상 최고의 인플레이션으로 가격이 더욱 비싸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활비도 치솟고 있다. 결국 소비자는 지출을 억제하려고 하거나 아예 소비 자체를 미룰 가능성이 높아졌다. 자동차 구매 의향 지수가 수요 약세를 가리키고 있는 이유다.
실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연식변경 모델을 내놓을 때마다 가격을 올리고 있다.
기아(000270) '더 2023 K5' 판매가격은 2400만원부터 시작한다. 가솔린 모델은 19만~113만원, 하이브리드 모델은 56만~167만원씩 올랐다.
현대차(005380) 아이오닉 5의 연식변경 모델도 기본 모델이 5005만원으로 책정됐다. 주행거리가 429㎞에서 458㎞로 늘어나면서 가격은 최상위 트림 기준 380만원이나 뛰었다. 2023년형 투싼도 기존 대비 149만원 인상됐다.
연식변경은 통상 1%대 인상률을 보이지만 지난해부터 5~7%대를 보이고 있다. 부품 공급망 불안과 원자재 가격 인상분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완성자 업체들은 자동차 강판, 반도체 등 여러 부품 가격이 죄다 오르니 자동차 가격도 오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완성차 기업은 판매량 감소에 따른 재무적 부담을 덜기 위해 연식변경과 함께 차 가격 인상이 예상된다"며 "특히 전기차는 배터리 소재 원가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어 가격의 급격한 인하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가격 인상 억제와 전기차로의 포트폴리오 전환, 공급망 개선 등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가격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오르면 소비자들은 더 이상의 급격한 가격 인상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공급망의 경우 적시생산 방식에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중요부품 재고 보유량을 늘리는 체제로 전환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태환 한국딜로이트그룹 자동차 산업 리더는 "불확실한 상황에 맞서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치 않고 무엇을 더 원하는지 확실하게 이해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황준익 기자 plusi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