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외면당한 '항의'…헌정 최초 반쪽짜리 시정연설

민주당 "국회무시 사과하라"…윤 대통령, 외면한 채 이동

입력 : 2022-10-25 오후 4:19:35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친 뒤 퇴장하자 피켓을 들고 야당탄압 중단을 촉구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민주당 소속 의원 169명은 국회와 야당을 향해 ‘이 XX들’, ‘종북 주사파와 협치는 없다’고 말한 윤석열 대통령 앞에서 ‘국회무시 사과하라’, ‘야당탄압 중단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진행했다. 야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전면 불참한 건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윤 대통령은 시위 중인 민주당 의원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그대로 지나쳤다. 제1당을 외면한 윤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행된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야당에 '초당적 협력'을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는 시기에 국회에서 법정기한 내 예산안을 확정하여 어려운 민생에 숨통을 틔워주고, 미래 성장을 뒷받침해 주시길 기대한다"며 "국회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혹시나 기대를 모았던 비속어 논란에 대한 유감 표명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민주당은 25일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1시간 앞둔 오전 9시 의원총회를 열고 시정연설 참석 여부와 항의 방법 등을 논의했다. 분위기는 무거웠다.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불법 대선 경선자금을 받은 혐의로 민주당사가 전날 검찰에 의해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하루 전부터 전운이 감돌았다. 게다가 윤 대통령이 해외순방 도중 국회와 민주당을 향해 "이 XX들"이라고 막말을 한 데 이어 최근엔 ‘종북 주사파와 협치는 없다’고 색깔론을 꺼내들면서 민주당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특히 검찰 칼날이 이재명 대표를 정조준하자, 이를 '정치보복'으로 규정하며 당대표 지키기에 나섰다. 
 
의원총회를 마친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국회에 도착하기 전까지 국회 입구에 위치한 계단에서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방식으로 항의한 뒤, 윤 대통령이 국회에 들어서면서 침묵 시위로 전환했다. “엄중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항의의 뜻을 표출하는 게 낫다”는 박홍근 원내대표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였다. 소속 의원 169명 전원은 국회 입구에 위치한 계단에서 “민생외면 야당탄압 윤석열정권을 규탄한다”, “국회모욕·막말·욕설 대통령은 사과하라” 등과 같은 구호를 외쳤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3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불참해 자리가 비어 있다. (사진=뉴시스)
 
민주당의 침묵이 시작된 건 이날 오전 9시39분경 윤 대통령이 국회에 도착하면서다. 윤 대통령의 국회 도착 소식에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감정이 격해졌는지 “이 XX가 웬말이냐”, “야당탄압 중단하라”, “국회무시 사과하라”고 외쳤다. 그러다 윤 대통령이 국회로 들어와 이동하자 단일대오로 침묵을 유지했다. ‘국회무시 사과하라’, ‘야당탄압 중단하라’ 등의 손팻말로 항의의 뜻을 윤 대통령에게 전할 뿐이었다. 
 
윤 대통령은 국회 입장과 동시에 고개를 돌려 민주당 의원들이 있는 방향으로는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은 채 국회의장과의 환담 장소로 향했다. 이 같은 윤 대통령의 태도에 침묵을 유지하던 의원들 사이에서 “쳐다보지도 않네” 등 허탈함이 담긴 발언들이 흘러나왔다. 침묵 시위를 마친 민주당 의원들은 곧장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하는 반대편에 위치한 예결위회의장으로 입장, 비공개 의원총회를 진행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시정연설 직전에 열린 환담 자리에도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오전 10시27분경 시정연설을 마쳤다. 본회의장을 나선 윤 대통령은 몰려든 취재진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지만 민주당의 시정연설 보이콧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국회를 빠져나갔다. 윤 대통령을 배웅한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시정연설에 불참한 민주당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정 비대위원장은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이렇게 무성의하게 야당이 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선택사항이나 재량사항이 아니라 의무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을 향해서 하는 시정연설이 아니고 국민을 향한 연설”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국회를 빠져나간 이후 재차 국회 입구에 위치한 계단에 모여 “야당탄압 중단하라”, “국회무시 사과하라”고 항의한 뒤 해산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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