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금리 상승과 하락장이 장기화하면서 전환사채(CB)를 발행한 일부 상장기업들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길어진 하락장으로 CB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 행사가 늘고 있는데, 시중 금리가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작년부터 의무화된 CB 상향 리픽싱(전환가액 조정)으로, 저금리인 CB 투자 매력도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지난 7월1일부터 지난달 28일까지 올해 하반기 중 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교환사채(EB) 등을 만기 전 상환 공시는 총 158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공시된 89건과 비교해 77.53% 증가한 수치다.
CB 등의 만기 전 상황이 크게 늘어난 이유는 국내 증시 급락에 따른 풋옵션 청구가 급격히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환사채는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할 때의 가격을 조정하는 리픽싱 조항이 있다. 주가가 하락할 경우 전환가능한 주식 수량을 늘려 CB투자자의 손실을 막는 용도로 사용된다. CB투자자는 향후 주가가 오를 경우 주식 전환을 통해 매매차익을 챙길 수 있다.
그러나 CB를 발행한 상장사들의 주가가 리픽싱 한도 밑으로 내려가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일각에선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CB의 경우 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오지만, 향후 주식으로 전환될 경우 자본금으로 전환된다. 주가가 전환가보다 높을 경우 주식 전환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주가가 리픽싱 한도보다 낮아질 경우 매매차익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CB 투자자들은 풋옵션을 행사에 원금 회수에 나서게 된다.
문제는 증시가 상승세를 보이던 지난 2020~2021년 규제를 피해 무리하게 CB를 발행한 상장사들이 많다는 점이다. CB는 일부투자자들 사이에서 ‘불패론’이 나오던 상품이다. 주가가 하락할 경우 전환가액을 낮추는 하향 리픽싱은 있지만, 주가가오를때는 리픽싱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주가가 오르면 CB 전환가액을 의무적으로 올리는 상향 리픽싱 등을 의무화했고, 상장기업들은 규제를 피해 대거 CB 발행에 나섰다. 작년 1월부터 10월까지 유가증권 및 코스닥시장에서 발행한 CB 건수만 493건으로 올해(357건)보다 38% 많았다.
풋옵션은 CB의 발행일 이후 1~2년부터 가능한 것이 일반적이다. 발행 조건에 따라 짧게는 6개월 이내에도 청구가 가능하다.
작년과 재작년에 급격히 늘어났던 CB들의 경우 대부분 풋옵션 행사 기간을 앞둔 상황이지만, 최근 하락장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전환가액이 한계치까지 낮아진 기업들이 급격히 늘었다. 일부 상장기업들의 경우 주가가 액면가보다도 낮아진 상황이다. 풋옵션 행사 가능성이 커졌지만, 시중 금리가 오르면서 기업들의 자금조달에도 어려움이 생기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전환사채는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대출이 어려운 기업들이 주로 발행해 왔다”며 “시장금리가 높아진 상황에서 풋옵션 행사가 이어질 경우 발행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