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정부의 존재감 보여줘야

입력 : 2022-11-17 오전 6:00:00
지난달 29일 오후 10시20분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좁은 골목. 핼러윈데이를 앞두고 수많은 청년이 축제를 즐기다가 압사 사고를 당했다. 당시 긴급뉴스를 보면서 믿을 수 없었던 광경은 밤새도록 이어지는 끔찍한 현실이 됐다. 축제는 참사가 됐다. 이 사고로 현재까지 총 158명이 사망했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지만, 그날 정부는 제대로 역할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참사를 대하는 안이한 인식으로, 누군가는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거짓으로, 누군가는 책임을 지겠다는 명분을 내세운 버티기로 국민을 분노하게 했다. 정부는 사실상 없었고, 정부의 존재를 의심하게 했다.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에 닥친 문제로 정부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지난 8월16일 미국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으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이 발효됐다. 특히 IRA는 전기차에 대해 최대 7500만달러의 보조금을 세액공제 형태로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혜택은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회원국인 북미 3개국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적용된다. 현재 미국에서 판매되는 우리 브랜드의 전기차는 모두 한국에서 생산된 이후 수출되므로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에 지난 7월27일 공개된 IRA 초안을 우리 정부가 빠르게 확인하지 못해 대응할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국가정보원이 IRA 관련 동향을 미리 파악하고도 관련 부처에는 IRA가 통과된 후에야 전파한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달 5일부터 이달 4일까지 진행된 미국 재무부의 IRA 규정과 관련한 의견 수렴 절차에서 국내 250여개 자동차 부품 기업을 대표하는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은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이 미국의 동맹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와 배터리에도 같이 적용될 수 있도록 차별적 요소를 삭제해 달라고 요청하고, 삭제가 어렵다면 미국 내에 전기차 공장을 짓고 있는 업체에는 해당 규정의 적용을 3년간 유예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국 내에 전기차 공장을 짓고 있는 업체이자 IRA 발효로 피해를 본 당사자인 현대차그룹도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현재 공개된 법 조항에 명기된 용어들의 정의와 요건을 구체화하고, 더 명확한 세부 기준을 수립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미국 재무부에 제출했다. 한국무역협회도 구자열 회장 명의로 "자국산 우대 요건이 국제 통상 규범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 기업에 미국 기업과 동등한 기회와 혜택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친환경차 세액공제 요건을 한국에도 똑같이 적용하거나 3년 유예 기간을 달라고 촉구하는 내용의 정부 의견서를 냈다. 정부는 의견서 제출과 함께 이를 바탕으로 양자 간 협의도 이어 나갈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고, 이 자리에서는 IRA도 논의 대상에 포함됐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이 IRA와 관련해 이전보다 진전된 발언을 한 것으로 평가되면서 낙관적인 분위기도 감돌지만, 아직 우리의 요청이 받아들여질지는 알 수 없다. IRA는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서 우리 기업의 생존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정부의 역할은 계속해서 중요하다. 정부의 존재감을 보여줘야 한다.
 
정해훈 재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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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