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허지은 기자] 금융당국이 재무건전성 위험에 시달리는 보험사를 구제하기 위해 유동성 규제를 완화했지만,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의 구제 조치에도 불구하고 시장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보험사들의 지급여력비율(RBC비율)은 악화했다.
1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생손보사들의 RBC비율이 전분기 말 대비 전반적으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RBC비율은 보험회사의 요구자본 대비 가용자본의 비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험사가 약속한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할 수 있을 정도로 자본 여력을 확보하고 있는 지를 의미하는 지표다.
금융당국은 최소한 RBC비율이 150%를 넘길 것을 권고하고 있다. 보험업법은 100% 이상을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100% 미만인 보험사에는 정도에 따라 금융당국이 경영개선을 위한 권고나 요구, 명령 조치를 내리게 된다. 판매자회사(자회사형 GA) 설립 등 경영을 위한 각종 추진 사항에도 제동이 걸린다.
업권별로 살펴보면 생명보험사 중 RBC비율 낙폭이 가장 큰 곳은 NH농협생명(107.28%)이다. 지난 6월말보다 78%p 하락했다. 같은 기간 교보생명의 경우 210.5%에서 175.9%로 34.5%p 하락했다.
삼성생명(032830)은 13%p 떨어진 236.2%로 나타났다.
한화생명(088350)은 10.6%p 하락한 159%로 나타났다.
손해보험사 중에서는
메리츠화재(000060)가 RBC비율이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지난 2분기 메리츠화재의 RBC비율은 212.4%였으나 9월말 들어 185.4%로 떨어지며 27%p의 낙폭을 보였다. 같은 기간 KB손해보험은 16%p 낮아진 181.3%,
현대해상(001450)은 15.8%p 줄어든 186.4%,
DB손해보험(005830)은 4.4%p 하락한 184.4%,
삼성생명(032830)은 비교적 소폭이기는 하나 0.2%p 떨어지며 295.4%로 집계됐다.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로 보험사의 RBC비율은 상반기까지 개선되는 분위기였다가 3분기 들어 모두 하락 전환했다. 금융당국은 가용자본을 책임준비금 적정성평가(LAT) 잉여액의 40%까지 허용하기로 인정한 바 있다. RBC비율의 분모인 가용자본 인정 범위를 늘려,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RBC비율이 하락하는 것을 조정하기 위한 조치였다.
금융당국의 구제 조치에도 불구하고 시장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RBC비율 하락을 면치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노건엽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RBC제도 변경과 시사점'에서 "많은 보험회사들이 저금리 환경에서 RBC 비율 관리를 위해 직접적인 자본 확충 외에 매도가능금융자산의 비중을 높이는 방식을 활용했다"며 "매도가능증권 비중이 높은 경우 RBC비율의 금리민감도가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3월말 기준 보험회사 RBC비율 현황. (자료 = 금융감독원)
보험사들은 현재 RBC비율 하락이 금융시장 환경 변화로 인해 회계장부 상 수치 변화를 의미할 뿐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의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또한 내년도에 신지급여력제도(K-ICS)에서는 부채가 시가로 평가되기에 지급여력비율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3분기 일부 보험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실적이 좋지 않았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여력인 RBC비율 하락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며 "채권에 투자하는 보험사의 특징으로 미루어보아 현재의 RBC비율 하락은 신용 경색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험사가 가용자본을 늘리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채권 발행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2개 보험사가 채권을 발행했으나 투자자를 찾지 못해 발행에 실패했다.
서 교수는 "증자를 위해 후순위 채권이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는 방법을 시도할 수 있지만 잠재적으로 주식으로 전환되는 증권이기에 발행 금리가 높다는 단점이 있고 발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며 "이익 창출을 위해 비용을 절감하고, 금리상승기에 채권가격은 계속 하락할 것이기 때문에 자산운용에 있어 채권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허지은 기자 hj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