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민주당 대변인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민주당의 헛발질이 심해졌다. 유튜브, 페이스북 등에서 가십거리로 떠도는 의혹을 국정감사와 당 회의 등 공식 석상에서 제기했다가 망신을 사는 일도 빚어졌다. 기자 출신으로 당 대변인인 김의겸 의원이 청담동 심야 술자리 의혹을 제기했다가 거짓으로 밝혀진 일이 대표적이다. 검증되지 않은 의혹들을 다급하게 제기해 상대에게 역공의 빌미만 주고 있다는 지적은, 그래서 뼈 아프다.
청담동 심야 술자리 의혹은 김 의원이 지난달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처음으로 공식 제기했다. 당시 김 의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지난 7월 19~20일에 윤석열 대통령, 한 장관, 김앤장 변호사 30여명이 자정이 넘은 시각에 청담동의 한 고급 술집에서 만났다는 제보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근거로 유튜버 ‘더탐사’가 제공한 ‘첼리스트 커플의 음성 녹취’를 제시했다. 한 장관이 직을 걸면서까지 한사코 부인했음에도 의혹은 이어졌다.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제2의 국정농단에 해당될 만큼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고 하는 등 사실상 당 전체가 관여됐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한 장관 등을 술집에서 봤다고 한 첼리스트 A씨는 경찰에 출석해 “전 남자친구를 속이려고 거짓말을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경찰은 휴대전화 포렌식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더욱 명확히 밝혀냈다. 자정을 넘겨서까지 윤 대통령, 한 장관 등과 김앤장 변호사들이 모여 부적절한 술자리를 가졌다는 김 의원의 주장은 결국 사실관계가 틀린 셈이 됐다.
김 의원은 윤 대통령 등에게 ‘유감’을 표현했다. 그는 지난 24일 기자들에게 보낸 공지를 통해 “(첼리스트의 ‘거짓말이었다’는)진술이 사실이라면 이 의혹을 공개적으로 처음 제기한 사람으로서 윤 대통령 등 관련 분들에게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다만, 김 의원은 “국정과 관련한 중대한 제보를 받고, 국정감사에서 이를 확인하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다시 그날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저는 다시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 논란을 깔끔히 마무리 짓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12일(현지시간) 프놈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14세 아동의 집을 찾아 건강상태를 살피고 위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장경태 최고위원은 최근 윤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의 심장질환을 앓는 아동을 찾아 사진을 찍은 것을 문제 삼았다. 장 최고위원은 지난 1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세계적으로 의료취약계층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빈곤 포르노에 대한 비판과 규제가 강력해지고 있다”며 “빈곤과 피후원국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불러일으키고 인권유린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난과 고통은 절대 구경거리가 아니다”며 “그 누구의 홍보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발언 당시만 하더라도 장 최고위원은 ‘가난’에 초점을 맞추면서, 당내에서도 “제기할 수 있는 비판”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굳이 ‘빈곤 포르노’라는 표현을 써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뒤따랐다.
이를 간파한 국민의힘은 ‘가난’이 아니라 ‘포르노’에 초점을 맞춰 장 최고위원에게 반격을 가했다. 장동혁 원내대변인은 지난 16일 장 최고위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며 “빈곤 포르노 표현을 써가면서 김 여사를 모욕하고 외교 성과를 폄훼했다”며 “국민들에게 일반적으로 인식된 (포르노의)부정적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굳이 그 표현을 찾아서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여성 의원들도 성명을 내고 “뜬금없이 ‘포르노’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단 말인가. 김 여사에 대한 인격살인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격 살인”이라며 최고위원직 사퇴, 출당을 요구하는 등 공세 수위를 높였다.
장 최고위원은 김 여사가 해당 촬영을 진행할 당시 조명을 썼다는 증거가 나왔다며 기획된 촬영이라고 맞섰다. 그는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외신과 사진 전문가들은 김 여사의 사진을 자연스러운 봉사 과정에서 찍힌 사진이 아니라 최소 2~3개 조명까지 설치해 사실상 현장 스튜디오를 차려놓고 찍은 컨셉사진이라고 분석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영상분석, 사진분석, 외신분석을 각각 공유했다. 이 중 영상 분석은 국내 한 커뮤니티에 게재된 글이었고, 사진분석 역시 자신을 사진사라고 소개한 네티즌의 SNS글이었다. 외신 분석은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 올라온 게시물로, 현재는 게시물이 삭제된 상태다.
빈약한 근거를 제시했다는 지적이 일자, 장 최고위원은 현지에 사람을 보내 당시 상황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장 최고위원은 25일 오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 안 그래도 한 분이 캄보디아 현지에 갔다”며 “한 분이 가셔서 아동의 주거 환경도 보고 (하려고)한다”고 말했다.
이에 국민의힘 차기 당권주자 중 한 명인 김기현 의원은 민주당을 향해 “하루빨리 이재명 대표를 손절하고, 김의겸 의원을 제명하고, 장경태 의원도 징계하기 바란다”며 “그게 민주당이 멸문의 화를 면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압박했다. 당사자였던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김의겸 의원에 대해 "사과할 필요 없다. 책임을 져야 하다"며 동시에 “저질 음모론에 올라타고 부추긴 이재명, 박범계, 장경태 의원 등에게 사과를 요구한다”고 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비판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신경민 전 의원은 김의겸 의원에게 "대변인이 신뢰를 잃으면 정당이 신뢰를 잃는 것"이라며 "같은 기자 선배로서 좀 나무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대변인 정도는 물러나는 게 맞다"고 주문했다.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은 "김 대변인이 유감을 표시했지만 유감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라며 "일부 유튜버들이 돈벌이를 위해 펼치는 마구잡이식 폭로를 대변인이 가져오면서 당의 신뢰를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극성 팬덤이 자양분으로 삼고 있는 혐오정치와 결별하기 위해서라도 김 대변인은 직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소영 의원은 “장경태 최고위원도 그렇고 대통령실도 그렇고 양쪽 다 좀 적당히 하셔라,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며 “장 최고위원 본인이 어떤 주장을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 근거가 좀 부실한 걸로 판명된 부분이 있다고 하면 이제 그 부분은 인정하면 되는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당 관계자도 “윤석열정부가 지지율이 낮고 논란을 일으켜도 민주당의 지지율로 오지 않는 것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의원들이 일단 던지자 식으로 하는데, 당이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4·7재보궐선거 국면에서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에게 내곡동 땅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 김어준씨는 TBS 뉴스공장에서 오 후보가 실제 내곡동 땅을 방문했다는 생태탕 집 주인의 증언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생태탕 집 주인은 당시 오 후보의 옷차림 중 ‘페라가모’가 기억에 남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민주당도 여기에 힘을 보태면서 선거는 ‘생태탕’ 진실게임으로 흘렀고, 정작 내곡동 땅 투기 의혹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박영선 민주당 후보는 오 후보에게 대패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