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승재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의 파업이 엿새째 지속되자 정부가 시멘트 분야 운송 거부자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이를 두고 민주노총과 노동법률단체들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29일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두고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요건과 모든 측면에서 정당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이는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우리 헌법과 근로기준법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업무개시명령은 물류차질이 심각할 때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발동될 수 있다.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될 경우 해당 화물차 기사는 즉각 업무에 복귀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한다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또 면허가 정지되거나 취소된다.
정부는 지난 24일부터 시작된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시멘트 출고량이 90% 이상 감소하고, 반 이상의 건설현장에서 레미콘 공사가 중단되는 등 국가 산업 기반이 흔들고 있다는 이유로 이날 업무개시명령을 의결했다.
이에 공공운수노조는 "사상 초유의 노동탄압이자 헌법 유린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노동자에게 계엄령과 같은 업무개시명령은 행정 권력을 앞세운 독재의 문을 연 결정이자, 대기업 화주만을 국민으로 여기는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노동자와 국민의 삶을 파괴하는지 드러내는 결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1항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지며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않는다. 또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않는다.
또 근로기준법 제7조를 보면 사용자가 폭행·협박·감금·정신상 또는 신체상의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하는 수단으로써 근로자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근로를 강요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업무개시명령제도를 둘러싼 이같은 위헌성·위법성 여부 논란으로 노동·법률단체들은 지난 2004년 처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적용된 적이 없다고 설명한다.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등 5개 단체들은 전날 성명에서 "도입 당시 사회 각계에서 위헌성을 지적하는 문제제기가 있었고, 첨예한 논란과 발동의 실무상 비용 등 여러 난점으로 정부가 도입 이후 현재까지 발동하지 않았다"며 "형사처벌과 행정제재를 무기로 삼아 업무수행 의무를 부과하는 업무개시명령은 근본적으로 위헌적"이라고 말했다.
업무개시명령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도 반한다고 했다. 이들은 "형사처벌이 예정돼 있음에도 업무개시명령의 요건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돼 있다"며 "'정당한 사유', '커다란 지장', '국가경제', '심각한 위기', '상당한 이유'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령을 내리는 자의 의사에 의해 순간마다 임의적으로 판단될 우려가 농후하다"고 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우리나라가 비준해 현행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 결사의 자유 협약(제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제98호)에 대해 ILO는 고용상 지위와 관계없이 모든 형태의 노동자에게 협약상의 권리가 보장돼야 함을 밝혀 왔다"며 "업무개시명령은 이를 정면으로 억압한다"고 꼬집었다.
화물연대는 파업을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업무개시명령에도 굴하지 않고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며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법원 가처분 신청을 포함한 취소소송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화물연대 총파업 결의대회가 열린 29일 한일시멘트 단양공장 앞에서 어명소 국토부 2차관이 현장을 방문해 파업 참여 조합원에게 정부 업무개시명령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승재 기자 tmdwo328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