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서 '기업 스스로 규율'로 선회…'위험성 평가' 관건

2026년까지 사고사망만인율 3분의 2로 감축
사문화된 위험성평가제도 활용…내년부터 의무화
중대재해 발생시 검찰·법원에서도 위험성평가 활용
'벌금형 중심' 영국 참고…중대법 처벌완화 진통 지속

입력 : 2022-11-30 오전 11:11:31
[뉴스토마토 용윤신 기자] 정부가 중대재해법상 ‘위험성 평가’를 기업 스스로의 규율에 맡기기로 했다. 노사가 함께 사업장 특성에 맞는 자체규범을 가동시키는 등 사업장 내 위험요인을 스스로 발굴·제거하는 안전관리 방식이다. 
 
특히 중재대해 발생 때에는 내년부터 의무화되는 기업의 위험성평가제를 검찰·법원 수사 단계에서도 활용한다. 하지만 시행 1년이 안된 상황에서 기업 셀프 개정이 처벌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더욱이 기업 스스로의 위험성 평가를 도입하면서 중대재해사고 사망 만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까지 낮춘다는 목표이나 사업장 중대재해가 오히려 늘고 있어 개선를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30일 정부가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오는 2026년까지 사고사망만인율을 0.29로 감축한다. 사고사망만인율은 전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중 산재 사고로 사망자가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할 때 사용하는 지표다. 사망자수의 1만배를 전체 노동자 수로 나눠 계산한다.
 
사고사망만인율은 경제수준이 발전과 반비례해 감소해왔다. 2004년 1.24에 달했던 사고사망 만인율은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산업안전보건법을 도입하면서 0.4~0.5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2014년부터 8년째 정체됐다.
 
정부의 이번 목표는 지난해 사고사망만인율 0.43의 3분의 2 수준인 0.29까지 줄이는 것이다. 특히 기업의 자율성과 자기규율 중심으로 제도 선회를 위해 위험성평가 제도를 전격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위험성평가는 사업장의 유해하거나 위험한 요인을 파악하고 해당 유해·위험 요인에 의한 부상 또는 질병의 발생가능성(빈도)과 중대성(강도)를 추정·결정해 감소대책을 실행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2013년 도입됐으나 산식이 복잡하고 강제성이 없어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
 
정부는 이행력이 있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 위험성평가를 의무화하되,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연차적으로 적용을 확대하기로 했다. 50~299인 기업은 2024년부터, 5~49인 기업은 2025년부터 의무화된다. 5인 미만 사업장은 행정력 등을 이유로 의무 대상에서 제외했다.
 
중소기업에서 전체 중대재해의 80%가 일어나지만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보건체계를 갖추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중소기업의 위험성평가제도는 단순화한다.
 
산안법상의 복잡한 방식이 아닌 체크리스트 등의 평가기법을 개발해 보급한다. 유사한 노동환경을 갖추고 있는 업종·직종에 대해 유해·위험요인별로 공통의 매뉴얼을 만들어 위험 수준을 자가진단할 수 있도록 한다.
 
사업장을 지도·감독, 컨설팅 시 기업의 위험성평가 수준을 측정·입력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든 후 모바일 앱을 통해 진단 결과를 비교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실제사고 뿐 아니라 사고가 발생할 뻔했으나 직접적으로 인적·물적 피해 등이 발생하지 않은 사고(아차사고)까지 실질적으로 평가한다. 사고분석 지원을 위해 '재해원인 분석·공유 매뉴얼' 마련, 세부업종 주요사고사례 등도 제공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는 30일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하고 2026년까지 사고사망만인율을 0.29로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출처=고용노동부)
 
아울러 중대재해 발생 원인이 담긴 재해조사의견서를 공개하기로 했다. 그간 수사자료가 공개되지 않았으나 충분히 공적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가공한다는 것이다. 
 
아차사고와 휴업 3일 이상 사고에 대해서는 모든 노동자에게 사고사례를 공유한다.
 
위험성평가와 관련해서는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한다. 사업장 점검 때에는 노동자 인터뷰를 통해 사고사례인지와 공유 여부를 중점적으로 확인한다.
 
사업장 지도·점검 때에도 위험성평가 실시 여부를 중점적으로 살피고 재발방지 대책의 적정성을 검토한다. 또 사업주뿐 아니라 노동자가 참여했는지 여부도 점검 사안이다.
 
위험요인 파악, 개선대책 수립 단계에서부터 사전준비, 위험성 추정·결정 등 전체 단계에 노동자의 참여가 확대되는 셈이다. 실제 현장에 적용이 가능한지 여부도 감독한다. 
 
내년 중 산안법을 개정해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지 않거나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경우에는 시정명령 또는 벌칙을 부과한다.
 
기업이 위험성평가를 실시하고도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에는 자체 노력 사항을 수사자료에 적시하도록 한다. 검찰·법원이 형을 판단할 때 고려할 수 있도록 자료로 제출한다.
  
그럼에도 사업장 중대재해가 줄어들지 여부는 미지수다. 지난 1월 중대법이 시행됐지만 50인(50억원) 이상 사업장 중대재해는 오히려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도 내년 상반기 중 산안법·중대법 정비를 위한 '산언안전보건 법령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다는 방침이다.
 
TF는 중대법의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위험성 평가의 적정한 실시, 재발방지대책 수립·시행 등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핵심 사항을 중심으로 처벌요건을 명확히 한다는 방침이다. 상습·반복, 다수 사망사고 등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확대한다.
 
예방실효성을 강화하고 안전투자 촉진을 위해 선진국 사례 등을 참조해 제재방식을 개선하고 체계 정비 등도 강구한다. 선진국의 사례로는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을 들었다.
 
해당 법은 기업에 상한 없는 벌금형을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중대법을 벌금 위주로 바꾸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시행된지 1년도 되지 않은 중대법에 대한 섣부른 평가, 시행령 개정 움직임 등이 동반되면서 기업 자율에 기반한 제도 변화가 산업재해 감소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우려가 여전하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 교수는 "그동안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중장기계획 보다는 비약적인 발전"이라며 "특히 중대재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사려한다는 내용이 진일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다만 강태선 교수는 "시행이 1년도 안된 중대재해법의 효과성을 언급한 것은 섣부른 것 같다"며 "중대재해법 도입은 꼭 필요했던 만큼 3년까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중대법 시행령 개정과 관련한 부분은 로드맵에 고민이 담겨 있고 획기적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서 다 뜯어고쳐야 된다"며 "말로는 자율로 가고 노력하면 봐준다.  처벌과 규제 중심의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일렬로 정돈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는 30일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하고 2026년까지 사고사망만인율을 0.29로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노동자 끼임 사망사고가 발생했던 SPC 계열 SPL 제빵공장 모습. (사진=뉴시스)
 
세종=용윤신 기자 yony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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