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해운업계 탄소중립 과제가 해일처럼 밀려온다. 국제연합(UN) 산하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까지 전세계 선박의 총 배출 온실가스를 2008년 대비 50%로 줄이겠다며 해운·조선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국내 해운산업이 투자자금 조달과 대안 연료의 불확실성이라는 안개를 뚫어야 하지만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이에 정부가 조선·해운·에너지 등 관련 업계를 한 자리에 모아 생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수석연구원은 지난달 30일 “한국 기업들은 각자도생이 몸에 배어 있고 그럴 능력도 있지만, 이 위기는 그렇게 헤쳐나갈 수준이 아니”라며 “다들 ‘위기이자 기회’라고 하지만 지금은 그냥 위기”라고 단언했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수석연구원이 지난달 30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정부 주도 무탄소 선박 개발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세계 각국은 무탄소 선박 과제를 기회 삼아 총력전을 펴고 있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로 조선을 포함한 제조업 수준을 높이려 한다. 국영 조선그룹 안에 연구개발과 설계 전담 회사가 따로 있다. 정부가 개발 분야를 정해 자금을 대면 기업이 대학과 연구한다. 각 사 개별 투자가 아닌 일괄 개발을 지향하고 전국 조선소가 기술을 공유한다.
일본은 정부 주도로 ‘해사 클러스터’를 만들어 관련 업체를 한데 모아 체계별 연구 분야 분담과 교류를 추구한다. 덴마크는 민간 기업 50여곳이 ‘미래 그린십(Green Ship of the Future)’이라는 네트워크로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양 연구원은 한국 정부도 해운·조선업계의 무탄소 기술 협력을 주도해, 중복투자에 따른 자금 낭비와 효율성 악화를 막아야 한다고 본다. 그는“한국 업체들이 위기를 헤쳐나갈 능력이 있다”면서도 “중국, 일본과 경쟁하려면 더 효율적으로 더 잘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 연구원은 “일본에서도 기업 간 불협화음이 있지만 정부가 ‘이러다 다 죽는다’며 억지로 앉히고 기업도 조금 수긍하는 편”이라며 “평시라면 문제가 없지만 지금은 전시 상황이라 대응 못하면 다 죽는다”고 말했다.
정부가 ‘깃발’을 들지 않으니 업계 내는 물론 업계 간 시너지도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양 연구원은 “해운사는 ‘조선사가 방법을 내겠지’ 하고 조선사는 ‘해운사가 해운에 유리한 걸 요구하겠지’ 하고 에너지 업계도 지켜보는 분위기라 지금까지 기본만 개발해놨다”며 한숨을 쉬었다.
양 연구원은 “살려면 다 같이 모여 논의하고 최적의 방안을 내, 선사들이 한국 배로 지구 환경을 지키게 해야 한다”며 “재정 건전성도 좋지만 정부가 돈 쓸 때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정부가 조선과 해운업계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해왔지만, 양 연구원은 해외 선진국에 비해 실효성은 물론 예산도 부족하다고 본다.
경쟁국들이 업계 내, 업계 간 협력을 추구하며 무탄소 연구개발 비용 절감과 속도전에 나선 배경에는 해운이 ‘국가 전략 자산’이라는 점도 있다. 전쟁 시 승패는 보급전에 좌우돼 대규모 상선단이 필요하다. 국제적 긴장이 높아진 해역에 선박 금융 부담을 뚫고 물자를 보낼 수 있는 건 국적 선대 뿐이다.
양 연구원은 “한국 해운업이 현재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느냐, 전세계 해상을 다닐 수 있느냐는 문제는 결국 탄소 중립을 얼마나 이행하느냐에 달려있는데 그런 점에서 굉장한 위기”라며 “이 위기 앞에서 경쟁이 아닌 협력이 핵심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