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일본의 ‘반격능력’, 양금덕 할머니 그리고 김태효

군사대국화 치닫는 일본…강제동원 피해자 훈장도 취소하는 한국

입력 : 2022-12-19 오전 6:00:00
 
미쓰비시중공업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94)씨가 11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후문에서 열린 '미쓰비시중공업 대법원 판결 4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1. “외교부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윤석열 정부가)일본을 왜 그렇게 무서워하고 눈치만 보는지 모르겠다.”
 
'2022 대한민국인권상' 대상자로 선정됐으나 외교부 제동으로 결국 서훈이 취소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93) 할머니는 언론에 이렇게 탄식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과 세종연구소가 양 할머니 같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포함해 한일간 쟁점문제를 논의하려던 민관토론회도 외교부가 “민감한 시기에 행사를 미뤘으면 좋겠다”고 종용해 취소됐다.
 
일본 보수 우익의 오랜 열망, '전쟁가능 국가'
 
#2. 일본 기시다 정부는 16일 각의(국무회의)에서 북한과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 대한 대응을 명분으로, 반격능력 보유 명기, 통합방공미사일방어(IAMD) 체계 구축, 방위비 2배 이상 증액 등을 골자로 한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3대 안보문서 개정안을 의결했다. 한마디로 일본을 ‘전쟁가능 국가’로 바꾼 것이다.
 
개정안의 핵심인 '반격 능력'은 일본이 공격당할 때는 물론 미국이 공격받을 경우에도 적용돼, 한반도 안보와 직결된다.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국뿐 아니라 미군 함정이 공격받을 경우 일본이 북한을 공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일본 보수 강경파의 오랜 열망이 실현되는 이번 개정은 동시에 전쟁 포기를 명시한 일본 평화헌법을 사실상 헌법 개정 없이 무력화하는 것이다. 방위상 필요하더라도 상대국을 선제공격해서 안 되며 침공해온 적을 일본 영토에서만 군사력으로 격퇴한다는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이 무너지고, 그동안 포기해온 집단자위권은 살려냈다. 
 
이번 개정에 따라 군사동맹인 미국과 일본이 ‘유사시’ 여부와 이에 따른 반격 여부에 대한 판단과 실행에 대한 권한을 행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적국의 일본 공격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판단 기준이 분명치 않고, ‘적극방어’ 개념을 담고 있어 선제공격의 길도 열어놨다.
 
전시작전통제권도 없는 우리가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우리 의사와 무관하게 휘말려 들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 정부의 대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외교부는 일본 기시다 내각이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의결한 직후 낸 입장문에서 "일본의 방위안보정책이 평화헌법의 정신을 견지하면서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투명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한반도 대상 반격능력 행사 시 우리 동의 필요 여부' 문제 관련해서는 "한반도 대상 반격능력 행사와 같이 한반도 안보 및 우리의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사전에 우리와의 긴밀한 협의 및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일본 내에서도 평화헌법의 근간을 허문 ‘위헌’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는 왜 이럴까. 위 두 사안을 연결하고 설명해주는 키워드가 두 개 있다. 중국과 김태효.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사진=뉴시스)
 
2008년 오마바 대통령 취임 이래 미국은 중국 견제에 국론이 통일돼 있다. 동북아에서 중국 견제에 대한 상당한 짐을 일본에 아웃소싱해왔고, 이번 일본의 3대 안보문서 개정도 이에 연결돼 있다. 미국은 한국도 이에 동참해 한미일 3각 군사협력을 고도화하고, 미국의 전 지구적 미사일방어망인 MD체계에 편입되기를 바라고 있다. 미국은 기시다 내각의 움직임을 적극 환영학고 나섰다. 국무장관은 물론이고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직접 "평화와 번영에 대한 일본의 공헌을 환영한다"고 밝혔을 정도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흐름에 적극 부응하고 있고,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은 그 핵심에 있는 인물이다. 그가 지난 2001년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역할 : 미·일 신방위협력 지침을 중심으로> 논문과 2006년 <한일관계 민주동맹(democratic alliance)으로 거듭나기> 논문에서 각각 주장한 ‘자위대 한반도 유사 사태 개입론’과 ‘자위대의 교전권 확보론’은 이번 일본 정부의 3대 안보문서 개정안과 놀라울 정도로 싱크로율이 높다.  
 
그가 2009년에 대표적인 일본 우익 정치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를 기리는 나카소네상을 받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밀실처리 문제로 2012년에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에서 물러난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인 셈이다.
 
‘담대한 구상’을 작명하고 세부안까지 만들었다는 김 차장은 외교안보 분야 문외한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선후보 시절 TV토론에서 윤 대통령은 "한미일 군사동맹도 검토하시는 건가"라는 심상정 후보에게 "절대 안 하실 건가?"라고 반문하는가 하면, "유사시에 한반도에 일본이 개입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라는 지적에도 "유사시에 들어올 수도 있는 거지만, 꼭 그걸 전제로 하는 건 (아니다)"라고 답해, 자위대 한반도 진출을 용인하는 듯한 오해를 불렀다.  
 
한미일, 동해상에서 사상 처음 2주 연속 군사훈련
 
윤 대통령 취임 뒤인 9월30일에 한미일은 급기야 동해 공해상에서 사상 최초로 대잠수함 훈련을 했고, 이어 다음달 6일에는 동해 공해상에서 미사일 방어 훈련을 했다. 동해상에서 2주 연속 한미일 훈련은 사상 처음이었다.
 
자, 이런 상황까지 왔다. 다음 장면은 무엇일까. 이번 개정안 의결 뒤 일본 정부 관계자가 공개 브리핑에서 "북한에 반격능력 행사시 한국 허가는 필요없으며 일본 자체 판단으로 할 것“이라고 천명한 것까지 덧붙이면 머리가 쭈뼛하지 않을 수 없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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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방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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