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6월2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열린 강원도 인제군 야산에서 발견된 북한 무인기 조사결과 발표 브리핑에서 북한 무인기를 공개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북한 무인기에 농락 당한 대한민국 안보…' 북한 무인기 5대가 남측 영공을 침범해 강화, 파주 등 상공을 비행했다. 이 중 1대는 서울 북부까지 침투했다. 우리 군은 격추에 실패했다. 그사이 무인기는 북한으로 돌아가거나 남측 레이더 탐지권을 벗어났다. 5년 만의 북한 무인기 도발에 군이 무력한 대처로 일관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결국 군 당국은 27일 북한 무인기를 격추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강신철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이날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열린 북한 무인기 관련 브리핑에서 "어제 적 무인기 5대가 대한민국 영공을 침범했고 우리 군은 이를 탐지·추적했으나, 격추시키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지시한 드론 부대 조기 창설과 함께 스텔스 무인기를 확보하는 등 북한의 무인기에 대응하기 위한 작전능력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길이 2m 이하 북한 소형 무인기 5대가 전날 오전 10시 25분쯤부터 약 5시간 동안 경기 김포 일대 군사분계선(MDL)을 넘었다. 이 중 1대는 경기도 파주·김포를 지나 은평구 등 서울 북부 지역 상공까지 약 3시간 동안 비행하다 북한으로 돌아갔고, 나머지 4대는 경기 김포와 인천 강화도 일대 상공을 배회하다 서쪽으로 날아가면서 우리 군의 탐지 범위를 벗어났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무인기가 '대통령실이 위치한 용산 상공까지 날아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다만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용산 상공을 비행한 적은 없었다"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군은 무인기 격추 실패 배경에 대해 민간 피해에 대한 우려와 3m급 이하 정찰형 소형 무인기의 경우에는 작전을 펼치기 어려웠다는 점을 들었다. 이성준 실장은 "탐지·추적·격추자산을 운용했으나 (북한 무인기가) 식별됐을 땐 민간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에 있었고, 그 외 지역에선 (북한 무인기가 레이더에서) 소실되기도 해 작전을 펼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지역 주민들에게 대피 안내 문자 등이 발송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북한 무인기가 실시간으로 움직이면서 저희가 거기에 추적과 감시를 하다 보니 문자 등으로 알리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북한 무인기가 우리 상공을 장시간 휘젓고 다니는 상황에서 군이 무인기 격추에 실패하면서 군의 대비태세에 구멍이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무인기 5대가 5시간 동안 수도권을 포위했고 1대는 서울 북부까지 진입했으니 공격 무인기였다면 우리 영토를 타격할 수도 있었다. 또 격추 실패로 이 무인기가 어떤 임무를 수행했는지 여부도 파악하기 어려워졌다. 5시간 비행이면 상당한 분량의 정찰 정보를 챙겨갔을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북한 무인기 대응 작전 지원을 위해 기지에서 이륙하던 공군 KA-1 경공격기가 추락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특히 민가와 근접한 곳에 추락해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이날 군은 새 떼를 무인기로 오인해 인천 강화군 석모도 일대에 재난 문자를 발송한 데 이어 대응전력이 출격하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우리 군은 무인기 침범 논란이 있을 때마다 매번 대책을 세웠다고 했지만, 이번에도 체면을 구겼다. 군이 북한의 무인기에 대비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4년 이후부터다. 당시 군은 북한의 무인기를 발견한 이후 저고도 탐지 레이더, 신형 대공포 개발, 전파 교란 무기 등을 개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북한의 무인기 침범 때도 신형 레이더 덕분에 군사분계선 이북부터 무인기 탐지가 가능했다. 다만 이번에는 남측의 전술조치선을 넘어온 무인기를 바로 격추하지 못해 초기 대응에 문제를 드러냈다.
문재인정부에서 국방부 대변인을 역임한 부승찬 전 대변인은 "군은 항상 전술조치선을 만들어 놓고 있고, 그때부터 준비 상태다. 이런 조치들을 다 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무인기가) 우리 영공으로 진입했는데 (격추에 실패했다면)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무인기가) 전술조치선을 넘어온 때부터 사격이 이뤄졌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떤 결정 단계에서 결정을 주저해서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27일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북한 무인기의 우리 영공 침범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무엇보다 윤석열정부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있을 때마다 이에 대응해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강조했다. 미국의 전략자산을 동원한 강력한 한미연합방위로 북한의 핵위협에 맞서 억지력을 강화하겠다는 차원이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26일 국회에서 2023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튼튼한 국방력과 일류 보훈, 장병 사기진작을 통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국가를 만들겠다"며 강한 안보를 약속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 군은 북한의 핵도 아닌 고작 무인기 대응에 취약점을 노출했다. 여권의 당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민가 피해를 우려해서 사격에 제약이 있었다'고 하지만, 적기를 격추시키지 못한 군이 그런 궁색한 변명을 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영공이 뻥뻥 뚫린 날, '물 샐 틈 없이 국토를 방위한다'는 (윤 대통령의) 다짐은 헛말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북한의 주요 군사시설을 감시 정찰할 드론부대 창설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어제 사건을 계기로 해서 드론부대 설치를 최대한 앞당기겠다. 최첨단으로 드론을 스텔스화해서 감시 정찰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북한의 무인기 침범에 대한 후속조치에 나섰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무인기 침범에 대해 "지난 2017년부터 전혀 이런 드론에 대한 대응 노력과 훈련, 전력 구축이 제대로 되지 않고 훈련이 전무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북한의 선의와 군사 합의에만 의존한 대북정책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우리 국민들께서 잘 보셨을 것"이라고 모든 책임을 전임 정부로 돌렸다.
이와 관련해 부승찬 전 대변인은 한국의 전투기가 비행속도 차이로 저속항공기인 무인기를 요격하기에는 상당히 어렵다며 향후 북한의 구형 항공기와 저속 항공기에 대해 대비하기 위한 전력의 보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윤석열정부가 핵미사일 대응하는데 올인하다 보니 정작 이쪽에서는 대응이 미비했다"며 "국방 전력에 있어서 최첨단 무기체계, 3축 체계를 강조할 게 아니라 이번 기회를 교훈 삼아서 저속 항공기에 대한 대응, 보완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북한이 무인기를 통해 우리 영공을 침범한 것은 북한식으로 허를 찌른 과시용 도발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 무기에 대한 한국의 저평가에 대해 보란 듯이 무인기를 띄워 한미의 전술적 틈새를 노렸다는 것이다. 앞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20일 담화에서 남측 전문가들 사이에서 북한의 위성사진에 대해 '조악하다'는 평가가 나오자 "말 같지도 않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한국의 위성기술 및 첨단 장비 능력에 대해 북한식으로 '헛점'을 찾아 드러냄으로써 조악함에 대한 평가에 맞대응"이라며 "한국의 북한 정찰능력 저평가로 상한 빈정을 만회하기 위한 무기 실험"이라고 지적했다.
남한의 대비 태세에 대한 시험 등 다목적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남한에 비해 군사적으로 열세인 정찰자산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있다. 특히 국방발전 5개년 계획에 따른 정찰분야 능력을 과시하며 내년에도 한반도 긴장 구도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된다. 27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날 열린 당 중앙위 제8기 6차 전원회의에서 “더욱 격앙되고 확신성있는 투쟁방략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