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제공한 사진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북한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출력 고체연료 발동기' 시험을 현지 지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2022년 북한은 그 어느 때보다 핵무력을 빠르게 고도화시켰다.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를 적극 활용한 덕분이었다. 한미일 안보협력을 중시하는 윤석열정부 출범과 맞물려 북한은 올해 들어서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8발을 포함해 총 67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군사도발 수위를 역대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최근엔 북한 무인기 5대가 영공을 침범한 가운데 이 중 1대는 서울 상공까지 휘저었다.
북한의 군사도발은 연초부터 공세적이었다. 1월5일과 11일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를 시작으로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 북한판 에이태큼스(KN-24), 초대형 방사포(KN-25) 등 이른바 '신형 KN계열 3종 세트'와 다양한 미사일을 끊임없이 쏘아 올렸다.
북한의 위협은 3월9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이후로 더욱 노골화됐다. 3월24일 북한은 ICBM 발사로 4년 전 핵실험·장거리미사일 모라토리엄(유예) 선언을 파기했다. 2018년 4월 북한이 자발적으로 했던 핵실험장 폐기 및 핵실험·ICBM 시험발사 중단 선언을 4년 4개월 만에 파기한 것이다. 이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7월27일 전승절 69주년 기념행사에서 윤석열정부의 선제타격을 '위험한 시도'라고 규정했다. 그는 "즉시 강력한 힘에 의해 응징될 것이며 윤석열정권과 그의 군대는 전멸될 것"이라고 강도 높은 발언을 했다.
급기야 북한은 9월8일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핵 선제공격 가능성을 명시한 '핵무력 법제화'를 선언했다. 핵무력 법제화 이후 북한은 한반도 내 군사적 긴장을 더욱 끌어올렸다. 북한은 9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 한미 연합훈련이 복원되고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가 잦아진 것을 빌미로 다양한 사거리의 탄도미사일과 방사포를 발사했다. 특히 북한은 10월31일에서 11월 5일까지 진행된 한미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에 격렬하게 반발하며 11월2일 하루에만 탄도미사일을 포함한 총 25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당시 1발이 분단 이후 사상 최초로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우리 영해에 근접해 떨어졌고, 이 때문에 울릉군에는 공습경보가 내려졌다.
지난달 20일 북한 조선중앙TV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과 발사 장면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북한은 11월 중순 이후 핵무력 고도화의 가시적 성과를 내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11월18일 사거리 1만5000km로 추정되는 ICBM '화성-17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자신의 딸 '김주애'와 화성-17형 발사를 참관한 뒤 "핵에는 핵으로, 정면 대결에는 정면 대결로 대답할 것"이라며 핵무력 강화 방침을 재확인했다. 12월에도 ICBM 고체연료 엔진 시험(12월16일)과 정찰위성 시험발사(12월18일)를 진행하며 지난해 1월 8차 당대회에서 선언한 국방과학발전·무기체계개발 5개년 계획 지침에 따라 체계적이고 순차적으로 국방력 강화 작업에 나섰다.
북한의 연이은 무력도발에 한미 당국의 대응도 한층 더 강화됐다. 특히 미국은 올해 핵잠수함부터 폭격기까지 전략자산을 잇달아 한반도에 전개시키며 '확장억제' 실행력을 높였다. 또 한미일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중단을 목표로 한 독자 대북제재에도 나섰다.
그러면서도 윤 대통령은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에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을 제안하며 대화의 문을 열어놨다. 담대한 구상은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에 나선다면 그 단계별로 북한의 경제·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조치들을 취하겠다는 윤석열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이다. 하지만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남조선 당국의 대북정책 평가에 앞서 우린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며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 제안 이후 4일 만에 단칼에 거절했다.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도 물거품 되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첫 단계인 남북 대화조차도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 26일에는 북한 무인기 5대가 남측 영공을 침범해 강화, 파주 등 상공을 비행했다. 이 중 1대는 서울 북부까지 침투했다. 북한 무인기가 우리 상공을 장시간 휘젓고 다니는 상황에서 군이 무인기 격추에 실패하면서 군의 대비태세에 구멍이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군 당국은 바로 다음 날인 27일 북한 무인기를 격추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과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지시한 드론 부대 조기 창설과 함께 스텔스 무인기를 확보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28일 진행된 국회 국방위 긴급 현안 보고에서는 무인기 도발을 상정한 합동방공훈련도 하겠다고 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제공한 사진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평양에서 이틀째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내년에도 남북이 대화국면으로 전환되기에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올해와 같은 '강대강 대치' 국면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7일 진행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자위적 국방력 강화의 새로운 핵심 목표들', '대외사업 원칙과 대적투쟁 방향' 등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이 내년에 신무기 개발을 시사한 데 이어 대남 정책 방향으로 대적 투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내년에도 강경한 대남 정책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9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IFANS)가 발간한 '2023 국제정세전망'에서는 "2023년 남북관계는 냉각 상태가 지속될 전망"이라며 "북한은 핵무력 고도화를 추구하고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태도 변화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남북한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고 남북관계의 정체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