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기업들이 재택근무 제도를 축소하는 가장 큰 배경에는 경영 환경 악화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엔데믹과 함께 찾아온 경기 침체를 대응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을 사무실로 불러들여 조직 기강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1년 전만 해도 재택근무를 채택하지 않으면 도태될 기업으로 여겨졌지만 경기 한파를 타고 분위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근무제 변경을 공지하는 기업들이 내세우는 공통 키워드는 '위기 대응'과 '선제적 변화'입니다.
SK텔레콤(017670)은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인공지능(AI) 컴퍼니로의 도약에 필요한 응집력 강화를 위한 변화"라고 '워크프롬애니웨어(WFA) 2.0' 전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지난 2020년 11월 박정호 부회장이 "내일 당장 코로나가 없어지더라도 전 직원이 집, 회사, 거점오피스 등 근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워크 애니웨어(Work Anywhere)'를 추진한다"며 근무제 혁신을 주창했지만, 경기 위축 우려가 드리우자 WFA 2.0을 가동, 재택근무는 주 1회로 제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카카오(035720)가 '카카오 온'이라 불리는 근무제를 시행하게 된 것도 지난해 10월 발생한 서비스 먹통 사태가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서비스 장애에 신속한 대응이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로 재택근무가 지목됐다는 후문입니다.
게임업계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일찌감치 감지가 됐습니다. 넥슨,
엔씨소프트(036570) 등 주요 게임사들은 지난해 7월 재택근무를 해제하고 전면 출근으로 전환했습니다. 재택근무로 신작 출시가 계속 미뤄지면서 실적 악화가 이어진 까닭입니다. 게임 개발 과정에서는 여러 부서 인력들의 협업과 소통이 필수적이고, 특히 출시에 임박할 수록 공동으로 진행해야 할 업무가 많은데 재택근무가 이를 가로막았다는 항변입니다. "2020년부터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체계가 되면서 게임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한 방준혁
넷마블(251270) 의장을 필두로 적지 않은 게임업계 인사들이 비슷한 고충을 털어놨습니다.
엔씨소프트 판교 R&D 센터 전경. 엔씨소프트를 비롯한 게임사들은 지난해 하반기 전면 출근제로 전환했다. (사진=엔씨소프트)
해외 빅테크 기업들의 사정도 다르지는 않습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트위터 인수 직후 재택근무를 폐지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새로운 방침이 싫은 직원은 회사를 떠나라"고 일격하기도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근무지침 변화에 직원들의 불만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는 출퇴근에 상당한 에너지가 소요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이직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의견들이 다수 눈에 띕니다. 실제로 카카오의 근무제 변경 공지 글에는 당일에만 '싫어요' 표시가 1000개 이상 달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 년간 10%대에 머물렀던 노조 가입률은 최근 50%를 넘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구글, 애플의 경우 사무실 출근을 강행하려다 직원 반발에 직면해 하이브리드 근로제로 한 발 물러서기도 했습니다.
기업들은 위기 돌파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구성원의 동의를 구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인력 유출을 막기위한 당근책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IT성지라 불리는 판교에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구내 식당이 연달아 생기게 된 배경입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