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여야 후보의 공통 공약이 해를 넘겨서도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간호법 이야기입니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처우 개선, 지역공공의료와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위한 간호정책, 간호인력 확보에 대한 국가와 지방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고 노인·장애인 등에게 요구되는 간호·돌봄 제공체계를 담은 법안입니다. 현행 법규 상에서는 의료법, 보건의료인력지원법 하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간호사 단체는 처우 개선은 물론 지역별로 균등한 간호 서비스 제공을 위해 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반대쪽에선 간호사의 이익만을 위한 법이 제정돼 보건의료계 혼란과 갈등만 야기한다며 반박하죠.
여야 대선 후보 모두 약속한 간호법 제정…법사위 계류만 240일 넘겨
간호법이 대선 정국에서 등장했던 면면을 볼까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후보였던 당시 20대 대선 공약으로 간호법 제정을 약속한 바 있습니다. 야당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 역시 대한간호협회와 간담회를 갖고 간호법을 제정하기로 새끼손가락을 맞걸었죠.
모두가 알다시피 대선 결과는 기호 2번의 승리였고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청와대를 떠나 용산에 터를 잡겠다던 정부는 그러나, 공약이었던 간호법 제정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간호법은 지난해 5월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습니다. 지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데 날짜만 헤아려도 무려 240일째입니다.
서울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내 간호법 제정 촉구 광고물. (사진=동지훈 기자)
거리로 나온 간호사들 "국민 요구 부응해야"
대선 공약이었던 간호법 제정이 차일피일 미뤄지자 대한간호협회는 거리로 나왔습니다. 전국의 간호사와 예비간호사,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는 매주 수요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여당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작년 11월에는 경찰 추산 3만명, 주최측 추산 5만명이 총궐기대회에서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 등 지도부가 삭발을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대한간호협회는 올해 들어 두 번째로 열린 대한간호협회 수요집회에서도 압박 수위를 높였습니다. 신경림 회장은 이 자리에서 "국민의힘은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국민과 약속한 간호법 제정을 소모적 정쟁으로 미루고 있다"면서 "2021년 3월 발의된 간호법이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이후 240일째 국회 법사위에 계류돼 있어 아직까지도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또 "국민의힘은 즉각 소모적 정쟁을 중단하고 국민을 위한 간호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면서 "간호법은 초고령사회에 부합하도록 보건의료체계를 개선하고 간호·돌봄에 대한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법안임을 잊어선 안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국회 앞에 설치된 보건복지의료연대의 간호법 폐기 설치물. (사진=동지훈 기자)
보건복지의료연대 "의료현장 혼란만 초래" 맞불
대한간호협회가 매주 수요일 간호법 제정을 부르짖자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보건복지의료연대 역시 맞불을 놓기 시작했습니다. 보건복지의료연대는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대한방사선사협회 등 간호법에 반대하는 13개 단체로 구성됐습니다. 이들은 국회 앞에서 릴레이 1인시위를 하는 등 간호법 저지를 위한 움직임을 전개하는 중입니다. 이와 동시에 대한간호협회 집회 하루 전인 화요일마다 반대집회도 지속할 방침입니다.
보건복지의료연대가 간호법을 막으려는 주된 이유는 직역 이기주의에 따른 보건의료계 혼란과 갈등입니다. 지난 6일 릴레이 1인시위에 나선 연준흠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가 "간호법 제정은 보건의료정보관리사, 임상병리사, 응급구조사, 간호조무사 등 보건의료계 타 직역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 자명하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죠. 연준흠 이사는 당시 "간호법안은 간호사를 제외한 모든 보건의료인이 반대하고 있다"며 "간호법 제정은 원팀으로 일하는 보건의료현장의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수많은 의료현장 종사자들에게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병원 한식구 갈등 커지는데 잠만 자는 국회
결국 간호법을 제정할지 폐기할지는 국회 판단에 달렸습니다. 대한간호협회가 원하는 대로 간호법이 국회 법사위 문턱을 넘는다면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치면 되니까요. 그도 아니라면 보건복지의료연대 말대로 폐기를 해도 되겠지요.
그런데 국회는 동면 중입니다. 1월 임시국회가 시작됐는데도 본회의 일정은 언제 재개될지 알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국회가 마비되니 병원에서 한식구로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갈등은 깊어지고 추운 겨울 길에서 보내는 시간은 길어지게 됐습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