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아스콘(아스팔트콘크리트) 업체들이 정부가 일부 대·중견기업에 특혜를 주고 중소기업을 역차별한다며 중소벤처기업부와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스콘 업계는 정부가 중소기업끼리 경쟁해야 할 관수(공공 구매) 시장을 대·중견기업에 내줬다고 보는 반면, 중기부는 관수시장 의존이 높은 시장 특성을 고려했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문제가 된 아스콘은 아스팔트와 자갈·쇄석 등 골재를 가열·혼합해 도로공사 현장에 납품하는 반제품입니다. 운반 시간이 1시간인 40~50㎞에서 생산·납품할 수 있고 시장 비율은 민수가 20%, 관수가 80%입니다.
관수 의존도가 높다 보니, 업계는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판로지원법)'에 따른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 지정제도에 민감합니다. 이 제도는 공공기관이 중기부 장관 지정 제품을 중소기업에서 구매해야 하는 제도입니다.
대·중견 관수시장 진입 허용에 중기 반발
그런데 중기부는 2021년 12월31일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 및 공사용자재 직접구매 대상 품목'을 고시하고 수도권과 충남권에 예외를 적용했습니다. 적용 기간은 2022년~2024년입니다. 중기부는 아스콘에 대한 특이사항으로 "서울, 경기, 인천 및 대전, 세종, 충남지역은 연간 예측량의 20% 이내에서 예외 가능"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중기부는 아스콘의 '유효한 경쟁입찰'이 어렵다며 범위조정 35개 품목에 포함시켰습니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2017년~2018년 대전·세종·충남지역 아스콘 연간 단가계약 입찰에서 담합이 있었다며 2021년 11월 4개 조합에 과징금 42억7400만원을 부과했습니다.
한국아스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와 산하 조합들은 반발했습니다. 관수 공급계약 방식이 기존 희망수량 경쟁입찰에서 2019년 다수공급자(MAS) 계약 방식으로 바뀐 이후 담합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졌고 경쟁이 강화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옛 방식인 희망수량 경쟁입찰은 기관이 최저가 순으로 업체와 계약하는 식이었습니다. 정부는 당시 조합과 업체 간 수의계약이 용이해 담합이 쉬웠다고 봅니다.
반면 MAS 계약은 계약 상대가 납품 실적과 경영 상태 등 자격을 갖추면 조달청이 이들 모두와 단가계약을 맺습니다. 수요기관은 이들 기업과 가격을 협상해 최종 계약상대를 정합니다.
아스콘 시장에서 대·중견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적지만, 조합은 작은 회사들이 흡수되고 있다며 우려합니다. 조합이 파악한 아스콘 공장 기업은 2021년 9월 기준으로 전국 520개입니다. 이 가운데 대·중견기업은 총 4곳으로 집계됐습니다.
대·중견기업 소재지는 정부가 특이사항에 넣은 곳과 일치합니다. 중견기업 2개는 수도권에, 대기업 2개는 수도권과 대전·세종·충남권에 있습니다. 중소기업은 수도권에 71개, 대전·세종·충남에 70개가 있습니다.
조합은 대·중견기업들의 아스콘 관수시장 진입으로 점유율이 고시 내 특이사항인 20%로 급등하는 반면, 이 지역 개별 중소기업 평균 점유율은 수도권 1.176%, 충남권 1.159%에 불과해 산업이 왜곡된다는 논리도 폈습니다. 조합은 한 중견기업이 세종과 포천, 충주, 안성 지역 회사를 인수하고 경남에서도 공장 매각 의사를 물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서울행정법원. (사진=이범종)
법원은 집행정지 인용...중기부 "시장 특성 고려해야"
연합회와 권역별 조합은 지난해 3월 중기부 상대로 낸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 고시 취소' 소장에서 "이들 기업에게 관수 아스콘 시장 잔류를 보장해 주는 것이 과연 아스콘 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유효한 경쟁 제고에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조합이 낸 집행정지 신청은 일부 인용됐습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김순열)는 지난해 4월 고시의 '연간 예측량의 20% 이내에서 예외 가능' 부분의 효력 정지를 결정했습니다.
재판부는 "서울, 경기, 인천 및 대전, 세종, 충남 지역에서 아스콘 관수사업에 참여해 온 신청인들 소속 소규모 아스콘 업체들이 갑작스러운 타격을 입거나, 해당 지역 아스콘 업계의 경쟁 질서에 혼란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보인다"고 했습니다.
중기부는 대·중견기업도 시장의 80%에 달하는 관수에 의존해야 하는 아스콘 시장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합니다. 고시의 취지는 관수 수요의 80% 이상을 중소기업 제품으로 사라는 의미이지, 20%는 중견 이상 기업 것을 쓰라는 뜻이 아니라고 합니다. 아스콘은 운반 시간이 1시간 이내여야 하므로 대·중견기업이 예외 범위 20%를 모두 차지할 수도 없다는 입장입니다.
중기부 관계자는 "아스콘의 거래 구조상 조합이 주도해 납품하는 상황 등 (담합이) 아직도 우려된다는 게 관계 부처와 업계 의견"이라며 "규정상 담합이 있던 품목에 대해 관계 부처가 지정을 반대하는 품목에 대해서는 지정을 못 하게 되어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관수 의존이 절대적인 시장에서 대·중견기업을 외면할 수 없다는 주장도 폈습니다. 이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크면 민수시장에만 있으라 할 수 있지만, 단시간에 납품해야 하는 아스콘 제품 특성상 20% 조달 시장을 중견업체가 갖고 80%는 중소기업이 납품한다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제품 특성상 수출을 못한다는 점도 근거입니다.
이어 "중소기업이 대·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다리를 만드는 차원에서 관수 의존도가 높은 품목에 대해서는 중견기업으로 컸을 때도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만들어갈 수 있게 시장을 조금 열어달라는 게 관계부처 의견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갑자기 대기업과 경쟁하라고 할 수 없으니 일부 예외를 허용하는 형태로 안을 만들었는데, 관계부처와 민간위원이 모인 운영위원회에서 아스콘 지정 제외 의견이 많았다"며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 지정 전 공정위의 담합 제재 사례도 있었지만 '20% 예외'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중소기업을 보호하도록 완화 조치를 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아스콘 조합과 중기부의 본안소송은 지금 진행중입니다. 지난해 11월17일 첫 기일이 시작돼 이달 19일 두 번째 변론기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