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정부 “이산가족 ‘생사확인’ 전면 추진”…어떻게?

입력 : 2023-02-10 오전 6:00:00
2010년 추석계기 남북 이산가족 1차 상봉 마지막날인 11일 1일 오전 금강산 면회소에서 열린 작별상봉을 마친 후 북측 최고령자 리종렬씨와 북측 아들 리명국씨가 가족들과 헤어지기 아쉬워하며 손을잡고 오열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그럼 선생님은 안 우시겠네요?”
 
2010년 10월에 금강산에서 한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 취재 때였습니다. 남북 가족들의 첫 상봉 행사를 기다리던 중에, 로비 한편에서 멋지게 머리를 올린 ‘올백남’ 현대아산 직원을 만났습니다. 이런 취재는 처음이라는 저에게 자기는 9번째라며 이제는 담담해졌다는 겁니다.
 
상봉이 시작되면서 웃는 표정인지 우는 표정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연로한 분들이 부둥켜안고, 한쪽에서는 까무룩 정신을 잃는 분들이 나오면서 의료진이 출동하는 장면들이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졌습니다. 한바탕 눈물 바람 취재를 하고 나오니 ‘올백남’은 기둥 뒤에서 대성통곡 중이었습니다. “이게 많이 본다고 무뎌지겠습니까?”
 
2박3일 상봉 행사의 마지막 일정인 ‘작별 상봉’은 이름 자체가 허망합니다. 앞으로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게 뻔한데, 그 마지막 작별을 위한 상봉이라니요. 이 행사까지 끝나고 나면 북측 가족들이 먼저 버스에 오릅니다. 형제가 좁은 버스 창문 틈으로 맞잡은 손을 차마 놓지 못하고 있는데, 버스 안 뒷좌석 노인이 눈치를 줍니다. 북측 젊은 보장성원(행사 지원요인)이 빨리 손을 놓으라고 눈을 부라리고 있는 거였습니다. 장남인 자기 대신 북한군으로 끌려간 동생이었습니다. 그 보장성원에게 욕이라도 해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이 비극의 현장은, 그저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는 훨씬 많은 다른 이산가족들에게는 천국으로 비쳤겠지요.

“이대로 몇 년 가면, 이산가족이라는 말 자체가 없어질 것”
 
통일부가 이산가족들이 최우선 과제로 꼽는 '생사확인'을 전면적으로 추진하겠다며 '제4차 남북 이산가족 교류촉진 기본계획(2023~2025)'을 발표했습니다. 상봉 신청자(누적) 13만3675명 중 생존자는 31.9%(4만2624명)에 불과합니다. 특히 상봉을 신청했으나 북한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숨진 사람이 작년에만 3647명에 달하고, 생존자 중에서도 80~90대가 전체의 절반을 넘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몇 년만 더 가면 이산가족이란 단어 자체가 없어질 것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정부는 또 △이산가족 교류 재개 및 활성화 △국군포로·납북자·억류자 문제 해결 △이산가족 교류기반 확대 △이산가족 위로 및 대내외 공감대 확산 등 4대 추진과제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참 허망합니다. 진보, 보수를 막론한 다수의 전문가들이 서슴지 않고 올봄 국지전 발생까지 예상하는 현재 남북관계 상황에서 이런 과제들을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것인가요?
 
역대 모든 한국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주의 문제이니, 정치 정세와 관계없이 만나자고 요구해왔습니다. 그 누가 이산가족 문제가 인도주의 사안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북한은 체제에 부담을 주는 정치 문제로 인식합니다. 조금만 찾아보면 북측 가족들이 모두 ‘같은 옷’, ‘같은 선물’을 들고 있다는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들이 나옵니다. TV화면만으로도 남북 가족 간 혈색과 건강, 의복 차이가 한눈에 드러납니다. 그래서 북한이 그 차이를 줄이기 위해 미리 며칠간 합숙하면서 영양 보충을 시킨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2018년 6월 22일, 3년 만의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논의할 남북 적십자회담이 열린 22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상봉 민원실에 이산가족인 이경욱(89세)씨가 남북교류팀 직원들과 신청 접수 상담을 하고 있다.

이산가족, 북한은 정치 문제로 인식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지원한 쌀과 비료 등 인도주의 지원은 이산가족 상봉을 끌어내는 수단의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인도주의와 쌀·비료 지원이라는 인도주의를 맞바꾼다”는 논리였습니다.
 
같은 분단국이었지만 독일은 동서독 상호 간 인적 교류가 지속적으로 허용됐기 때문에, 이산가족 문제가 우리만큼 심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독일은 서독이 대가를 주고 동독의 정치범들을 데려오는 ‘프라이카우프’(freikauf)사업을 비밀리에 시행했는데, 1963년부터 89년까지 34억 6400만 마르크(약 15억 달러) 규모의 현금과 현물을 주고 3만3755명을 데려왔습니다. 그 결과로 25만명에 이르는 이산가족이 재결합하는 효과를 낳았다고 합니다.
 
이 프라이카우프는 우리에게 영감을 줬습니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09년 10월 당시 임태희 장관이 북측 김양건 부장과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납북자, 국군포로 생사확인·서신교환, 이산가족 상봉, 한국전쟁 전몰자 유해 발굴, 고향방문을 정례화하되, 그것을 패키지로 쌀과 비료를 제공”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정권 내부 이견으로 정상회담 추진 자체가 무산됐습니다.
 
또 박근혜정부에서도 이완구 국무총리와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국회에서 “한국형 프라카우프'를 검토해볼 가치가 있다”고 말해 주의가 환기됐었고,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공약집에는 실었으나 이후 국정과제에서는 빠졌습니다.
 
예민한 사안임은 분명하지만, 현재 남북관계와 윤석열정부의 대북정책을 감안하면 논의 자체가 어려운 지경입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는 “이산가족의 고령화 상황을 감안해 가용한 정책수단을 최대한 활용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선언 외에 어떤 방법이 있는 것입니까.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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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방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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