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멋지다 연금아~

입력 : 2023-02-27 오전 6:30:00
구현모 KT 대표가 연임 의사를 철회했습니다. 꼴랑 10% 지분도 안 되는 최대주주 국민연금이 나선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30% 지분 갖고도 회사 주주명부 열람조차 못 하는 경우를 지켜본 터라 10%로도 저럴 수 있구나, 과연 주권행사의 쾌거로다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무슨 연유로 구 대표의 연임을 반대했는지 모르겠더군요. 모 증권사는 그가 연임하지 못할 것 같다며 대폭 상향했던 목표가를 며칠만에 다시 내렸습니다. 즉 그가 연임에 실패하는 것이 KT의 기업가치를 훼손한다고 분석했다는 말이겠죠.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국민연금은 KT를 위해 반대했을 텐데 정작 시장은 그가 기업가치를 높일 적임자라 봤으니.
 
구 대표가 역임한 지난 3년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KT는 지난 3년간 매출을 늘렸고 이익을 키웠습니다. ‘DIGICO KT’를 내세워 미래를 그려가고 있습니다. 불어난 실적 덕에 주가가 올랐고 배당을 늘려 주주들에게 신임받았어요. 
 
국민연금은 뭐가 못마땅했을까요? 연금재원 고갈이 화두인 시대에 배당 더 많이 줘서? 주가 올려 국민연금의 평가익 키워줘서? 투명한 지배구조, 공정한 절차… 그게 본질이 아님을 누구나 짐작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7.53% 지분을 보유한 SK텔레콤을 비롯해, 투자한 기업들이 대표 후보를 추릴 때 이의를 제기한 적이 몇 번이나 있는지 궁금하군요.
 
국민연금이 평소에도 이렇게 주권행사에 적극적이었다면 주주권익을 거스른 경영자와 수많은 결정들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존재감을 관치로 드러내다니 매우 유감입니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재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사주 마법’을 막을 자사주 매입 후 소각 의무화 추진을 백지화했습니다. 
 
경영권 방어의 주체가 누구인가요? 아무래도 특정 주주 같습니다. 주주라면 누구든 주식 수에 맞는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합니다. 그게 자본주의에요. 금융위의 결정은 특정 주주가 법인 소유의 자산(자사주)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게 눈감아준 것입니다. 최대주주라는 이유로 다른 주주보다 과잉보호 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주식회사에도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면 모를까.
 
이 두 사례를 보면 정부가 가려는 길이 주주권익 보호인지 경영자 보호인지 오너 보호인지 그냥 그때그때 다른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주총 시즌이라고 요즘 행동주의펀드를 견제하는 목소리도 있던데, 행동주의펀드의 등장은 비틀어진 한국 자본시장이 만든 필연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SM엔터가 고작 1% 지분 가진 얼라인파트너스에게 굴복한 것은 얼라인 때문이 아니죠. 그 뒤에 나머지 주주들의 울분이 쌓여있음을 무섭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권행사는 일관된 방향으로 도도하게 흘러갈 것입니다. 주식회사인 이상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당랑거철. 그것이 정부라고 해도.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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