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 질의를 받는 최정우 포스코 회장.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KT가 결국 백기를 들었습니다. 회장 후보 경쟁에 열의를 보였던 구현모 대표가 대통령과 정치권 압박에 자진사퇴함에 따라 외풍에 흔들린 정황이 부각됩니다. 다음은 우산을 잃은 포스코가 표적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KT나 포스코가 정권의 소유물처럼 비치는 것에 재계는 우려의 시선을 보냅니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KT 구현모 대표는 임기가 끝나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민연금이 연임 반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의 경우 임기가 1년 남았습니다. 국민연금이 중도하차를 요구할 명분은 약해 보입니다. 하지만 대통령 신년인사회나 다보스 출장에서 제외되는 등 퇴진 압박이 계속돼 왔습니다.
정부와 정치권 개입 목소리가 커질수록 낙하산 우려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구 대표가 빠진 차기 회장 경쟁에도 여권 관련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포스코도 낙하산에 취약합니다. 현 이사진에도 전관 출신이 많습니다. 사외이사 과반수는 올해와 내년 임기가 만료됩니다. 국민연금이 이사 선임부터 관여할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정부위원과 가입자대표 등 이해관계자 중심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런 연금이 소유분산기업 연임 문제에 반기를 들었고 윤석열 대통령까지 관련 문제를 겨냥한 발언을 했습니다. 여당 의원도 KT, 포스코가 토착화하고 참호를 구축한다며 거들었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포스코 내외부에서 벌써 차기 회장 후보 하마평이 나돈다”라며 “당정의 지나친 경영 개입은 헌법(126조)에서 금지한 사기업의 경영을 국가가 감독하거나 통제, 관리하는 문제로 비칠 수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새 정권 때마다 외풍을 막기 위해 줄 대는 인사가 횡행하는 등 기업 자원이 심각하게 낭비된다”라며 “셀프연임을 지적하면서도 새 정권 때마다 흔들리는 불안한 지배구조 문제는 외면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사례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를 악용하는 선례가 될 것이란 비판도 나옵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고 제대로 역할을 안 하다가 이번에 정치에 휘둘리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라며 “문제 인사가 연임된다는 의식을 공유할 수는 있지만 이런 식의 접근은 문제를 더 키운다”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스튜어드십코드는 정치권력, 경제권력에서 독립돼 가입자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인데 지금은 정치권력에 휘둘리는 것같이 악용되기 때문에 나쁜 선례”라며 “차제에 연금 이사장을 국회에서 총리 인준에 준하게 국회 동의 받아서 임명하는 식으로 바꿔야 독립성이 유지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지난달 정치자금법 위반 재판 공판에 출석하는 구현모 KT 대표 모습. 사진=뉴시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