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허울 뿐 '스튜어드십 코드'

입력 : 2023-03-21 오전 6:00:00
금융지주사 최고경영자(CEO) 인사를 두고 관치 논란이 끝이 난 듯 하면서도 끝이 나지 않습니다. 금융당국에 이어 국민연금까지 나서서 CEO 인사에 입김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한금융지주(신한지주(055550)) 주주총회를 일주일 앞둔 지난 16일 최대주주(지분 7.69%) 국민연금공단이 진옥동 회장 내정자의 사내이사 선임안건에 반대하기로 했습니다. 정부가 연달아 지배구조를 지적한 '소유 분산 기업' 가운데 나온 첫 반대표입니다.
 
다만 반대표의 배경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가득합니다. 국민연금은 과거 사모펀드 사태로 중징계까지 받은 금융지주 CEO에 대해선 '찬성표'를 던진 바 있습니다. 특히 진 내정자의 경우 지난해 '리딩뱅크(실적 1등 금융지주)' 자리를 탈환하는 등 경영 능력도 인성받기도 했습니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는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서 회장 후보를 반대하는 것은 회사의 가치와 주주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만큼 찬성을 권한다"며 진 내정자의 회장 선임에 찬성표를 냈습니다. 
 
이번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무더기 반대표를 낼 것이란 우려가 나오기는 했습니다. 올해 초 업무보고에서 윤석열 대통령도 "소유 분산 기업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가 작동돼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습니다.
 
최근 국민연금이 투자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데 실질적 영향을 주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 위원 9명의 구성을 마치면서 그 면면이 드러났습니다. 수탁위는 국민연금 투자 기업의 사내외 이사 선임, 기업 분할, 분리 상장 등 핵심 이슈 등을 논의해 찬반 의결권 행사를 결정합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수책위 9명의 위원을 기업계와 근로자, 지역가입자가 각각 3명씩 추천했는데요. 그런데 최근 열린 올해 첫 기금위에서 각 단체는 2명씩만 추천하고, 정부가 결정하는 3명의 전문가가 추가됐습니다. 가입자 단체들이 추천하던 전문가 3인은 정부 산하기관 및 학계 추천 전문가로 바뀌면서 정부 입김이 강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이 관철하지 못한 금융지주사 CEO 교체가 다시 진행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금융당국이 '선임 절차의 투명성'을 문제 삼자, 연임이 유력했던 CEO 모두 '용퇴'하는 식으로 물러난 바 있습니다. 신한금융이 진옥동 신한은행장을 새 회장 후보로 내정한 데 이어, 농협금융은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을 CEO로 맞았습니다. BNK금융지주도 빈대인 전 부산은행장을 회장으로 선임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의 자금 운용 실적은 처참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운용 수익률 -8.22%를 기록했는데요. 기금운용본부 출범 이후 최악의 성적표입니다. 연기금이 투자에 항상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만 국민연금 재정에 있어서 운용 수익률은 중요합니다. 기금 고갈 시점을 앞당길 수도, 늦출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주식과 채권을 모두 1389억원어치 보유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식 직접 투자분이 294억, 위탁 투자분이 923억원어치였습니다. 채권도 위탁으로만 171억원어치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SVB의 주식과 채권은 보호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국민연금이 자산 운용을 과정에서 대량의 주식을 보유하는 만큼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것도 기업가치를 올리고 투자수익도 올리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일련의 행보를 보면 정부가 의도한 정책 방향이 국민연금에 이식됐을때 국민과 기업의 이익이 극대화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최근 일련의 행보를 보면 '구원투수'라는 별칭이 무색한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합니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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