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과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으로 입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윤혜원·이강원 기자] 헌법재판소가 검찰 수사권 축소를 골자로 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입법 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권한은 침해됐지만, 검수완박법의 효력은 유지한다는 판단을 내놨습니다.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 이전으로 되돌리려던 여당의 반란이 무력화된 셈입니다.
“가결 선포, 권한 침해 아냐”…검수완박 무효화 제동
헌재는 23일 서울 종로구 대심판정에서 유상범·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의장과 국회 법사위원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 청구 사건에서 법사위원장 부분은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일부 인용하고 국회의장에 대한 부분은 기각했습니다.
지난해 검수완박을 입법하는 과정에서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 논란이 거세게 일었는데요. 이에 대해 헌재는 당시 법사위원장이 민 의원의 위장 탈당 사실을 알면서도 안건조정위원으로 선임해 실질적인 조정심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전체회의에서 토론 등 절차도 생략됐기에 국회법 위반이라고 봤습니다.
다만 헌재는 국회의 검수완박 법안 가결 선포가 무효라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에 출석해 법안 심의와 표결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받았고 실제 출석하는 등 의장의 가결 선포가 심판을 청구한 의원들의 권한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또 헌재는 국민의힘 측이 청구한 심판에 대한 결론을 내린 뒤 이어진 법무부와 검찰이 국회를 상대로 청구한 심판에 대해서도 애당초 심판을 청구할 자격이 없거나, 권한 침해 가능성이 없다며 각하를 결정했죠. 이로써 국민의힘은 의원들의 권한 침해는 인정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요구했던 ‘검수완박의 무효화’는 이뤄내지 못하게 됐습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3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를 마친 뒤 대표실로 이동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헌재가 아니라 정치재판소” 맹공
국민의힘은 헌재의 판단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헌법의 정치적 중립성에 의구심을 표했습니다. 또 이날 결정으로 양곡관리법 등 야당의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정당성을 얻게 됐다고 역공했습니다.
김기현 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헌재의 결정은 궤변의 극치”라며 “거짓말을 했는데 허위사실 유포는 아니라고 하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판결을 옮겨온 것 같다”고 쏘아붙였습니다. 이어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해괴망측한 논리”라며 “헌재가 아니라 정치재판소 같아 보인다”고 질타했습니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과 함께 이번 심판을 청구한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국회 본회의 도중 기자들과 만나 헌재 결정에 대해 “아주 심히 유감”이라며 “무효라는 것이 확인됐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법안의 효력을 무효로 하지 않은 여러 가지 배경이 있거나, 또는 잘못된 논리적 판단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미애 원내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9명의 헌법재판관 중 5명은 우리법연구회 등 진보성향 재판관들로, 친 문재인 정권, 친 민주당 성향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헌재가 법사위원장이 소수 정당 법사위원들의 심의, 표결권을 침해했다고 결정함에 따라 같은 취지인 양곡관리법 등 의회 폭거로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에 대해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의 ‘정당성’도 당연히 획득한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23일 오후 본회의를 마친 뒤 원내대표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검수완박' 헌재 판결관련 브리핑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숨 돌린 민주당, 한동훈 사퇴 정조준
민주당은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입법권에 도전하는 ‘정치 소송’을 일삼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마친 뒤 헌재 선고와 관련한 기자간담회를 열고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은 오로지 ‘검찰 독재정권’을 위해 국민 뜻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나섰다”며 “입법권에 도전하며, 법치에 어긋난 무리한 소송을 강행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한 장관은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해놓고 그 판단이 나오기도 전에 입법 취지에 반하는 불법 시행령으로 검찰 수사 범위를 모조리 되돌린 상태”라며 “법치를 뒤흔들며 심각한 국가 혼란을 자초한 데 대해 당장 책임지고 사퇴할 것을 촉구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윤 대통령을 향해서도 “헌재 판단을 무겁게 받아들여 오만과 독선에서 벗어나 국민과 국회를 존중하길 바란다”며 “검찰개혁 입법을 무력화하려던 시도에 대해 분명하게 사과하고, 당장 불법 시행령부터 원상회복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박광온 민주당 의원도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검찰개혁 법안은 박병석 국회의장과 박홍근, 권성동 양당 원내대표가 여러 차례 협의를 거쳐 만들어 낸 안”이라며 “국민의힘이 여야 협치를 이뤄내고 싶다면 더는 자기부정의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습니다.
윤혜원·이강원 기자 hwy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