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용 전기요금만 누진제 정당"… 9년만의 대법 판결 의미는

"누진제 적용 부당하게 불리하지 않아"…소비자 패소 확정
다만 "시간대별·계절별 차등 요금제 활용 여지 있어" 첫 판단

입력 : 2023-03-30 오후 3:28:00
 
 
[뉴스토마토 김수민 기자] 대법원이 주택용 전기요금에 누진제를 적용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단하면서 9년 동안 이어진 소송이 마무리됐습니다. 
 
소비자의 패소가 확정되긴 했지만 시간대별·계절별 차등 요금제 등 다양한 방식의 전기요금제가 함께 활용될 여지가 있다는 첫 판단을 이끌어내는 등 의미가 결코 적지 않습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A씨 등 87명이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낸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0일 밝혔습니다.
 
원래 누진제 약관의 정당성을 판단하려면 일반적인 계약에 적용되는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법) 6조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는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약관 조항'은 공정성을 잃었으니 무효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주택용 전력 소비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돼 일상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공익적 성격도 띠는 전기요금의 '특수성' 또한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습니다.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전기요금 약관, 고객 이익 침해할 만큼 일방적이지 않아"
 
재판부는 전기요금 약관이 전기사업법과 정부의 감독·통제를 받고 약관 작성·인가 과정에는 전기위원회나 전문위원회 등 소비자 의견이 반영될 길도 열려있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전기 판매 사업자(한국전력)가 거래상의 지위를 남용해 고객의 정당한 이익과 합리적 기대를 침해할 정도로 약관 내용을 일방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어 "누진제는 전기 사용자 간에 부담의 형평이 유지되는 가운데 전기의 합리적 배분을 위해 필요해 도입된 경우에 해당한다"며 "약관법이 정한 '고객에게 부당하기 불리한 조항'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전기요금 산정이나 부과에 필요한 세부적인 기준을 정하는 것은 전문적·정책적인 판단을 요하고 기술 발전·환경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필요도 있다"며 "정책에 따라서는 시간대별·계절별 차등 요금제 등 다양한 방식의 전기요금제가 누진요금제와 함께 활용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1·2심도 한전 손 들어줘…"사회 정책적으로 필요"
 
전력 사용량이 많을수록 요금이 비싸지는 전기요금 누진제는 1973년 1차 석유파동을 계기로 1974년 말 도입됐는데, 이후 국내 전기 사용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에는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아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소송은 A씨 등 전력 소비자들이 2014년 "한국전력이 위법한 약관을 통해 전기요금을 부당 징수한다"고 주장하며 시작됐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가 소송을 대리해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앞서 1심과 2심은 한국전력의 손을 들었습니다. 전기요금 약관이 사용자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것은 아니고, '한정된 필수공공재'인 전기의 절약 유도와 적절한 자원 배분 등 사회 정책적 목적상 누진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전력사용 계량기 (사진=연합뉴스)
 
김수민 기자 sum@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김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