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특유의 반짝거리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흡사 영롱하게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 색깔. 뻐끔거리면 통통 튀어오르는 수중의 투명한 물방울들처럼 그 위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오묘한 옥색 같은 목소리.
앨범 커버에 박제한 수중 이미지, 눈을 감고 자유롭게 손과 발을 뻗치고 있는 행동은 흡사 음악의 인어, 세이렌이라도 되겠다는 의지의 표상일까. 앨범 커버는 실제 영화 ‘미션임파서블’에 등장한 수영장에서 촬영했다고.
"물 속에 있었을 때 느껴지는 그런 자유로움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고요하고, 적막하고, 어떤 평화로운 기쁨이 느껴지는 그런 상태. 앨범 제목처럼 이 세상에 없는, 초현실적인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던 이유도 있고요."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화상 모니터를 켠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팝스타 엘리 굴딩(36)이 말했습니다. 7일 전 세계 동시 발표하는 정규 5집 음반 'Higher Than Heaven'에 대해 굴딩은 "어릴 적부터 동경하던 팝 음악에 대한 러브레터"라며 "파워 발라드 같은 장르나 플리트우드 맥, 아바와 같은 1980년대 음악적 영향을 느끼실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고 소개했습니다.
7일 전 세계 동시 발표하는 정규 5집 음반 'Higher Than Heaven'으로 돌아온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팝스타 엘리 굴딩(36). 사진=유니버설뮤직코리아·ⓒCatie Laffoon
굴딩은 그간 몽환적인 신스팝 사운드에 서리처럼 허스키한 목소리를 입혀 세계 팝 시장을 흔들어온 음악가입니다. 2010년 3월 발표한 데뷔 앨범 'Lights'로 단숨에 UK 앨범 차트 1위를, 전 세계적으로 16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이 음반은 뒤늦게 빌보드 메인 음반 차트 2위까지 오르며 미국 시장에서도 흥행했습니다.
2집 'Halcyon(2012)'과 3집 'Delirium(2015)'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스타덤에 오릅니다. 'Anthing Could Happen', 'Love Me Like You Do' 같은 메가 히트곡들을 포함해 영미권 모두를 장악하는 팝스타로 도약하게 됩니다. 코로나 팬데믹 때는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는 '밝은 파랑' 컬러톤의 4집 'Brightest Blue(2020)'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라우브('Slow Grenade'), 디플로('Close To Me'), 쥬스 월드('Hate Me') 같은 세계적인 팝스타들과의 협업으로 굴딩식 팝 외연을 한층 넓힌 음반입니다. 특유의 음색 덕에 영화 OST 작업에도 많이 참여했습니다. 특히 영화 '어바웃 타임' 삽입곡 'How Long Will I Love You'와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삽입곡 'Love Me Like You Do'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2년 5개월 만에 내놓는 이번 음반은 영국의 시골 마을 옥스포드셔의 한 스튜디오에서 협업 식으로 엮은 결과물입니다. "지난 2년 간 스튜디오에는 그 어느때보다 어두움이 깔려 있었고 팀원들 모두 앉아 각자의 방식으로 그걸 헤쳐가고 있었어요. 아무래도 팬데믹 락다운이 끝난 직후 제작한 앨범이라 굉장한 행복, 기쁨, 사랑 같은 섬세한 감정들을 담으려 했습니다."
7일 전 세계 동시 발표하는 정규 5집 음반 'Higher Than Heaven'으로 돌아온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팝스타 엘리 굴딩(36). 사진=유니버설뮤직코리아
"약을 복용했나 싶을 정도로 강렬한 느낌의 사랑"이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직접 설명은 했으나, 앨범명은 다소 아리송합니다. 해석하면 '천국보다 높은 차원의 공간('Higher Than Heaven')'.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세계나 공간이라고 보면 될까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사랑 같은 감정과도 비슷한 측면이 있지요. 사랑이 전부인 어떤 세상, 고통 혹은 실연의 아픔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봤습니다. 음악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초현실적인 세계죠. 이 세계에서는 사랑만이 당연히 우리에게 가질 수 있는 어떠한 해결책 혹은 방법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굴딩의 목소리는 신디사이저, 전자음악을 근간에 둔 팝 음악과 조화를 자주 이뤘으나, 폭발력 있는 목소리는 록이나 힙합 같은 장르에서도 부각되곤 합니다. 스스로의 목소리를 '마법사'나 '카멜레온'이라고 표현한 굴딩은 "가장 좋은 점은 제가 제 목소리를 하나의 악기로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정리했습니다. "음악 위에서 바로 노래를 부를 수 있죠. 분위기에 따라 굉장히 좀 급하거나 굉장히 파워풀한 음색을 낼 수도 있고 부드럽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톤이나 목소리의 조절은 고의적일 때도 있고 고의가 담기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7일 전 세계 동시 발표하는 정규 5집 음반 'Higher Than Heaven'으로 돌아온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팝스타 엘리 굴딩(36). 사진=유니버설뮤직코리아
최근 세계 팝 시장에서는 과거 팝 사운드를 세련되게 편곡한 스타일의 곡들이 인기입니다. 굴딩 역시 그레그 커스틴(엘튼 존·매기 로저스), 코즈(마돈나·두아 리파), 앤드류 웰스(할시, 영블러드) 등 히트곡 메이커들을 대거 수혈해 80년대 팝의 현대적 변용을 이뤄냈습니다. 밝은 신스·일렉트릭 사운드에 심장 소리 같은 베이스라인을 박아넣고, 몽환적인 음색은 그 위를 물고기처럼 헤엄칩니다. 앨범명과 동명인 타이틀곡 ‘Higher Than Heaven’에 대해 굴딩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드라이브나 산책과 같은 음악"이라며 "신비로운 어떤 여름날 저녁 풍경을 연상케 한다. 사랑이란 감정으로 기분이 굉장히 붕 뜬 상태를 표현했다"고 소개했습니다.
평소 음반과 관련한 사회 운동을 펼치기로도 유명합니다. 2017년 UN이 주관하는 뉴 보이스 어워드(New Voices Award)를 수상했고, UN 환경 홍보대사와 WWF(세계자연기금) 앰버서더로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팬데믹 시기 발표한 전작('Brightest Blue') 관련한 환경 운동이나 액티비즘 운동을 하지 못해 아쉬웠다"는 그는 이번 앨범 준비 기간 동안 아이를 낳는 변화도 겪었습니다.
"저는 워커홀릭적인 기질이 굉장히 강하거든요. 팬데믹 기간에는 팬들과 연결될 고리가 없어서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베이킹이라든지 독서를 하며 집에서 줄곧 쉬었고 아기를 출산하기도 했어요. 무엇을 예상해야할지 몰랐던 삶의 변화였고, 체력적으로도 잠이 부족한 시기가 많았지만, 음반 작업 과정 자체는 부드럽게 잘 진행됐습니다. 제 개인적인 일을 다룬 거라기 보다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
7일 전 세계 동시 발표하는 정규 5집 음반 'Higher Than Heaven'으로 돌아온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팝스타 엘리 굴딩(36). 사진=유니버설뮤직코리아
2019년 그룹 레드벨벳과 'Close To Me (Remix)'를 협업한 굴딩은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불고 있는 K팝 열풍을 체감한다"고 했습니다.
"리믹스 작업 뿐만 아니고 직접 작사를 한다든지 더 제대로 된 협업 작업을 다양한 K팝 음악가들과 하고 싶습니다. 저 역시 케이팝에 나오는 춤이라든지, 군무, 그리고 엄청난 인파, 음악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프로덕션 과정을 보다 보면 굉장히 놀라게 되는데요. 그래서 K팝이라는 장르 자체가 '어나 더 레벨'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정말 좋은 팝송을 썼다고 생각하고서도 케이팝을 딱 들어보면 정말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대단한 작업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해요."
2018년, 내한 공연으로 한국 팬들과 만난 굴딩은 "무조건 내년에 가고 싶다"며 "보통 이런 식으로 인터뷰에서 밝히면 실천해야 하니까 미리 이렇게 답해야겠다는 작전을 짰다"며 웃었습니다.
"저번 방문 때 한국 팬들이 굉장히 정중하면서 동시에 저 덕분에 행복해했다는 기억이 많이 납니다. 이러한 기억은 굉장히 보람차고요. 사실 어떤 공연 혹은 페스티벌에 가면 관중들의 반응이 기대 이해하거나 제가 그들부터 이제 리액션을 끌어내는 데 굉장히 노력을 해야 될 때가 있어요. 그런데 한국에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는 모든 팬들이 굉장히 저를 너무나 좋아해 주고 사랑해 주시더라고요.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저도 얼른 다시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 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랜 기간 사랑·응원해준 팬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