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이 한반도 내 강제동원 피해자(국내 피해자)도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재단은 ‘강제징용 피해자 및 유족 지원 특별법’을 통해 피해자들의 보상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왔는데 국외를 비롯해 국내 피해자들 보상을 함께 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그간 일본, 중국 등 국외로 강제동원된 피해자를 중심으로 보상이 논의됐던 것에 비해 피해 인정 범위가 확대될 여지가 생긴 겁니다.
현재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수혜 국내 대기업의 기부금을 통해 ‘승소한’, ‘국외’ 강제동원 피해자를 중심으로 배상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특별법 제정, 국내 피해자들의 추가 소송 등 변수가 남아 있어 정부의 ‘제3자대위 변제’ 방침의 문제점이 부각될 것으로 보입니다.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지난 6일 오전 나주시 금성관 망화루 앞에서 열린 망국적 굴욕외교 윤석열 정부 규탄 나주시민 일동의 기자회견에 참석해 윤석열 정부와 한일정상회담 결과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8년 대법 판결 이후 국내 피해자들, 하루 수백 건씩 전화”
재단 관계자는 12일 <뉴스토마토>에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국내 피해자들 측에서 ‘왜 우리는 보상을 해주지 않냐’고 하루에 수백 건씩 전화가 왔다”며 “저희도 이런 점을 감안해 특별법에서 국내 피해자·유족들도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재단에 따르면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의 규모는 648만8467명입니다. 이들은 1938년 일본의 국가총동원법 시행에 의거해 각종 산업 현장에 집단·폭력적으로 동원된 노동자를 지칭합니다. 동원된 지역은 주로 일본·중국·남사할린·동남아시아·태평양 등 해외와 한반도 국내로 나뉩니다. 강제동원 문제는 그간 국외 피해자들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졌는데, 최근 국내 피해자들 역시 적절히 보상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겁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요구를 고려해 현재 법 조문을 만들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국내 피해자가 피해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재단에 따르면 국내외 강제동원 피해자 총 780만4376명(2016년 기준) 중 군인과 군무원을 제외한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는 648만8467명에 이릅니다. 국외 피해자 104만5962명의 6배 수준입니다. 국내 피해자들의 경우 강제동원 당한 뒤 풀려났다가 다시 동원된, 중복 동원된 건이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이들 다수는 강제동원을 증명할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입증에 어려움이 있는 상황입니다.
재단도 이를 고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에 소장하고 있는 명부를 통해 국내 피해자 입증을 진행하겠다는 방침입니다. 국가기록원에는 현재 일본 정부로부터 전달받은 명부, 우리 정부에서 생산한 명부, 기타 민간 기증 명부와 국내·외 수집 명부 등을 소장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일본 정부로부터 전달받은 명부는 법적 효력이 명확한 상황입니다. 현재 국가기록원은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이 방일해서 요구해 1991~1993년에 전달받은 군인·군속·노동자 명부 등 12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중 강제동원 노동자 경우 11만4822명으로, 국내·외 피해자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신윤순 사할린강제동원억류피해자한국잔류유족회장이 지난 21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주최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을 지원하는 특별법 제정을 위한 20시간 유족 의견발표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내 피해자들까지 한국 기업이 그 돈을 다 어떻게 보상하나”
국내 피해자들이 모여 소송을 제기할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장덕환 일제강제노역피해자 정의구현전국연합회장은 “국내 피해자들 규모가 600만명이 넘는데, 이들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왔다”며 “작년부터 이들의 피해 보상을 위한 소송 준비에 돌입했다”고 전했습니다.
현재 정부로부터 공식 인정받은 국외 피해자들이 21만6992명이 존재합니다. ‘포괄적 배상’을 원칙으로 한 특별법이 제정돼 통과된다면 정부는 승소한 피해자 외 21만6992명에게도 보상해야 하기 때문에 배상금 규모가 20조원을 넘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국내 피해자까지 합치면, 배상 규모는 대폭 늘어날 전망입니다.
정부는 일단 ‘승소’한 ‘국외’ 피해자를 중심으로 배상을 진행하겠다는 방침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을 빼고 국내 기업의 기부금을 중심으로 한 제3자 대위 변제안을 추진하면서,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해당 방안이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장 회장은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서 수혜를 본 포스코 등 대기업이 기부금을 내, 변제하겠다는 논리인데 허점이 있을 수 밖에 없다”며 “피해를 준 일본과 기업들이 변제를 하지 않고 피해국인 한국이 이를 책임지면 그 많은 국·내외 피해자들을 어떻게 다 보상한다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재단의 방안에 대해 총론에는 동의한다”면서도 “피해자의 범위, 보상 금액 등에 대해 실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총선 표심용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