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창업자 멘탈 중시하는 해외VC…"한국도 본받아야"

국내 투자업계는 북돋기보다는 압박…창업자 홀로 감당
실리콘밸리선 정신건강 중요하게 인식…멘탈케어 전문 시설 생겨나

입력 : 2023-04-19 오후 3:50:27
[뉴스토마토 변소인 기자] 벤처시장에 자금이 메마르면서 벤처창업자들의 정신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경우 벤처캐피탈(VC)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벤처창업자들의 정신건강을 챙기고 있지만 국내에는 벤처창업자를 위한 정신건강 관련 정책이나 지원이 부실한 실정입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벤처투자액은 전년 대비 60.3%나 줄었고 벤처펀드 결성액은 78.6%나 감소했습니다. 초기기업에 대한 투자보다는 중기투자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존에 사업을 하고 있던 이들의 부담이 훨씬 커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벤처창업자들은 자금이 끊기면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놓입니다. 그렇게 되면 직원들의 월급도 주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 전전긍긍하며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투자사들의 압박까지 받으면서 정신적으로 위태로운 것이 현실입니다.
 
한 VC 관계자는 "시리즈 A라운드를 유치하고 회사가 성장할 수 있을 줄 알았다가 후속투자가 이어지지 않으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벤처창업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거기가 '사각지대'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중대형 투자사들의 경우 창업자들을 북돋아주기보다는 압박을 통해 구조조정, 체질개선, 현금흐름 창출 역량 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며 "창업자들이 이 모든 것을 홀로 감당하면서 그들의 정신 건강은 외면당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래픽=디캠프
 
지난해 5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와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은 창업자의 정신건강 문제와 원인을 분석한 '스타트업 창업자 정신건강 실태 조사 보고서'를 공동 발간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 창업자의 정신건강 유병률을 살펴보면 우울, 불안, 수면문제, 자살의 유병률이 다른 인구집단에 비해 높게 나타났습니다. 스트레스의 경우 심한 수준의 비율이 41%로 거의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창업자의 경우 과도한 책임과 업무가 주어지는 역할 과부하를 겪기 때문에 정신건강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나타났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나 민간기업에서 창업자에게 지원하는 영역은 멘토링이나 공간 제공, 금전적 지원 등에 그쳐 창업자의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에서는 스타트업 창업자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요구되는 동시에,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는 창업자와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고 있지 않은 창업자 모두를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 문제 관련 인식개선 사업의 필요성이 시사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사업연차가 5년 이상인 창업자가 5년 미만인 다른 집단에 비해 우울, 자살 위험성, 스트레스가 더 높게 나타나 창업자 개인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조직의 안정적 운영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사업 연차가 5년 이상의 창업자에 대한 정신건강 지원이 필요하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나 국내 VC들의 경우 벤처창업자 정신건강에 대해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한 VC 대표는 "해외 VC들이 벤처창업자의 정신건강에 대해 지원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케이스에 불과하다"며 "우리는 그저 벤처창업자와 아픔을 공감하며 같이 소주를 마신다. 지금은 소주가 더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습니다. 극단적인 사례들은 개인적인 문제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는 "벤처창업자는 기본적으로 의지가 남다르고 투자 검토 과정에서도 집요한 질문 과정을 통과한 강한 멘탈을 가지신 분들이 많다"며 "당연히 신경을 써야하는 분야는 많지만 사업하는 분들 중에 (정신건강이 위태로운) 그런 케이스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반면 실리콘밸리에는 벤처창업자의 멘탈 케어를 전문으로 하는 의료기관과 상담 시설 등도 생겨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일부 해외 VC들의 경우 벤처창업자의 정신건강도 사업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보고 특별 관리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해외 VC로부터 투자를 받은 한 벤처기업 대표는 "해외 VC들은 벤처창업자의 정신 관리에 크게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벤처창업자의 정신건강이 사업 성과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한 달에 한 번 무조건 병원을 찾아 정신과 상담을 받게 한다"며 "지금 같이 어려운 때에 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도 이런 부분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진영 더인벤션랩 대표는 "실리콘밸리쪽은 벤처창업자의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알고 관련 시설을 확대하고 있는 분위기"라며 "우리나라도 24시간 일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창업자들을 위해 지원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더인벤션랩의 경우 초기 창업자들이 직원들과 겪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온라인에 'CEO라운지'를 만들어 조직 운영법 등의 고민을 나누고 서로 돕도록 하고 있습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창업가들을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코스포는 스타트업 경영 위기 극복 지원을 위해 '스타트업 올라운드 케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제 침체로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가 길어지면서 코스포가 창업가와 스타트업의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연간 프로젝트입니다. 코스포는 조만간 창업가 정신건강 관리를 돕는 '멘탈 헬스케어'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변소인 기자 byl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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