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누가 위험을 안고 얼마나 대가를 내야 하는가.' 중소기업계 14년 숙원 '납품단가연동제'를 둘러싼 잡음이 여전합니다. 지난 8일 처음 열린 납품단가연동제 로드쇼에 대기업 단체장이 전원 불참해,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서운하다고 말한 일이 대표적입니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원도급 업체와 하청업체 간 하도급 거래 과정에서 원자재 가격이 변동할 경우 이를 납품대금에 반영하는 제도입니다. 10월 제도가 시행되면 위탁기업은 주요 원재료(납품대금의 10% 이상인 원재료), 조정요건 등 연동 관련 사항을 약정서에 넣어 수탁기업에 의무 발급해야 합니다.
위탁기업은 납품대금 연동에 관한 사항을 적기 위해 수탁기업과 성실히 협의해야 합니다. 일각에선 이 제도가 계약자유의 원칙을 어기고 중소기업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며 반대했습니다.
이에 해외에선 비슷한 사례가 없는지, 있다면 어떻게 운용되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제도 안착이 순조로울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이에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23일 '납품대금 연동제의 이해와 안착' 심포지엄을 열고 전문가 의견을 모았습니다.
최수정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실장이 23일 서울 강남 베스트웨스턴호텔에서 열린 ‘납품대금 연동제의 이해와 안착’ 심포지엄에서 해외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중소벤처기업연구원)
일본, 이유 없는 가격 동결은 '부당하청대금'
납품대금은 외국에서도 민감한 주제입니다. 첫 발제자인 최수정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실장이 일본·미국·호주 등 해외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일본에선 노무비와 원재료비, 에너지 비용 상승을 거래 가격에 반영하지 않은 이유를 수탁업체에 밝히지 않을 경우 하도급법상 '부당 하청대금 결정'에 해당돼 하청법상 시정 권고 등 조치를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이에 대한 판단 근거를 명확히 한 '하청대금 지불 지연 등 방지법에 관한 운용 기준'이 개정됐습니다.
최 실장은 "만일 코스트(원료비)가 올라 하청업자가 거래 가격 인상을 요구했는데 가격을 조정하지 않을 경우, 이유를 서면이나 이메일로 반드시 대답해야 한다"며 "대답 없이 가격을 동결한다면 부당하청대금 결정 행위로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일본 중소기업청은 '가격 협상 지원 사업'으로 하도급 중소기업이 위탁기업 계약부서에 견적을 제출하거나 가격 협상할 때의 노하우 습득을 위한 지원도 합니다. 위탁 업체와 수령 업체와의 협상 담당자가 발주 업체와의 가격 협상 때 활용할 수 있는 '가격 협상 사이트 지원 문서'도 있습니다.
미국과 호주는 법으로 강제하지 않는 대신 상세한 가이드라인으로 납품단가 연동을 유도합니다. 미국 노동통계청의 가격연동조항 설계 가이드라인에는 △조정이 필요한 기본가격 설정 △변동 기준의 적절한 지표 설정 △계절에 조정되는 지표 사용 유무의 구체적 표기 △가격조정 빈도 명시 △가격 조정 공식 정의 등이 포함됩니다. 호주 통계청도 가격연동조항에 대한 가이드라인으로 비슷한 내용을 제공합니다.
납품단가연동제가 수탁기업 혁신을 저해한다는 우려에 대한 반박도 나왔습니다. 송창석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경우 혁신을 할 수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추가로 혁신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라는 건 상당히 무리한 요구"라고 말했습니다.
송 교수는 "대기업은 리스크 관리 능력이 중소기업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연동제 도입으로 협상력에서 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소기업은 안정적인 납품단가로 이익을 얻고 대기업은 리스크 관리 대가로 더 많은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어 윈윈"이라고 했습니다.
양찬회 중소기업중앙회 혁신성장본부장이 납품대금연동제 예외조항 사각지대에 대한 중소기업계 우려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중소벤처기업연구원)
예외조항 악용 막고 대기업도 입증 책임져야
예상되는 사각지대와 더불어 현장 목소리를 시행령에 적극 반영해 부작용에 대비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양찬회 중소기업중앙회 혁신성장본부장은 '쪼개기' 계약을 우려했습니다. 1억원 이하 소액 계약과 90일 이내 단기 계약, 업체간 '미적용' 합의 등이 예외 조항이기 때문이지요.
양 본부장은 "매년 10억원씩 하던 계약을 1억원 미만으로 쪼개 연동제를 악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6개월~1년 하던 계약을 3개월 단위로 끊어버려도 회피할 수 있어, 시행령에 합리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레미콘 같은 경우 90일 이내 계약이 많고 도로 포장에 쓰이는 아스콘도 구간별 계약을 하기 때문에 한 달 이내, 일주일 단위로 계약 기간이 설정된다는데, 그러면 다 빠져나갈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위탁사와 수탁사 간 합의 강요 문제가 발생할 경우, 대기업의 입증 책임이 반영돼야 한다는 의견도 냈습니다.
이 밖에 정부의 현장 모니터링 강화, 납품단가 연동제 미이행 건수 공시, 원재료 지수 인덱스 개발·보급, 법 시행 이전 맺어진 수년치 계약에 대한 조치 등이 거론됐습니다.
양 본부장은 "예상하지 못한 사정 변경에 대해서는 반드시 반영해줘야 되는 것이 공정이고 상식"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