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한화가 고려아연과 자사주를 교환한 배경에 승계 목적이 담긴 구체적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김동관 부회장의 최측근인 김모 사장이 승계 작업을 주관해온 가운데 특정 로펌이 자사주 교환 방안을 설계·진행했다는 것입니다. 회삿돈으로 자사주를 매입했는데 승계를 위한 사익편취 목적이 분명하다면 배임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입니다.
24일 한화그룹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유명 A로펌이 승계 방안으로 설계해 자사주 교환을 진행했다”라며 “부족한 김동관 부회장의 한화 지분에 보탬이 되면서 경영권이 강화됐고 승계가 사실상 완성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A로펌은 과거 김승연 회장에게 거슬려 관계가 끊겼다가 이번 승계 작업을 통해 관계를 복원시켰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이어 “포괄적 승계 작업은 김모 사장이 주도한 것”이라고 귀띔했습니다.
김모 사장은 김동관 부회장 등 총수일가 지분 100% 회사인 한화에너지 및 그 종속회사 한화임팩트 대표이사를 겸임하고 있습니다. 한화임팩트 상장을 통한 구주매출 등이 총수일가 개인회사인 한화에너지 자산가치를 높일 최대 방편으로 꼽히며, 한화솔루션 등 계열사와 내부거래로 성장해온 한화에너지는 이미 한화 지분 9.7%를 모아둔 상태입니다. 여기에 자사주 7.3%를 우호주로 확보해 승계는 거의 완성됐다는 것입니다.
작년 11월23일 한화는 고려아연에 대한 자사주 처분을 공시하고 고려아연 측 지분 1.2%를 확보하는 대신 한화 지분 7.3%를 고려아연에 내줬습니다. 직전까지 의결권 없는 자사주가 8.8%였습니다. 그 중 7.3%가 의결권 있는 우호주로 변하고, 자사주는 1.2%만 남게 됐습니다. 한화는 주주 공동 자산인 배당가능이익으로 매년 자사주를 사오다 교환 직전 작년 3~5월에도 추가 매입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소액주주들도 의결권 지분 희석, 배당가능이익 분산 등 손해를 입게 됐습니다.
법조계는 한화가 사업 제휴 목적이라 밝혔지만 승계 목적이라면 횡령이나 배임 소지도 있다고 봅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침 개정 중인 공정거래법상 사익편취규정에도 닿습니다. 개정안은 부당한 이익에 대해 ‘제공주체·객체·특수관계인간의 관계, 행위의 목적·의도 및 경위, 제공객체가 처한 경제적 상황, 거래규모, 귀속되는 이익의 규모·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궁극적으로 ‘변칙적인 부의 이전 등 대기업집단의 특수관계인 중심으로 경제력 집중이 유지·심화될 우려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도록 했습니다.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는 “특정 로펌에 승계팀이 있어서 전문적으로 재벌 승계만 전담 설계·컨설팅하고 그 노하우로 계속 수주하는 것”이라며 “회사는 배임소지를 피하기 위해 경영상 목적을 얘기하는데 이런 편법들을 현행법으로 막기가 힘들다. 근본적으로 자사주를 취득하면 자동소각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위평량 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회삿돈으로 자사주를 사서 사용하는 데 승계 의도가 분명했다고 하면 문제가 있다”라며 “그런 경우 다양한 방법으로 법률을 피해가는데 설령 법률을 위반하지 않았더라도 사실관계를 분석해 규명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화는 “자사주 매각을 통해 자기자본 증가와 부채비율 감소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 투자가치 제고, 전략적 제휴를 통한 새로운 사업기회 모색을 위해 고려아연과 자기주식을 교환한 것”이라며 “한화 이사회에서 결정한 것이며 승계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해명했습니다. 아울러 “한화 자사주 매각은 김희철 사장과 전혀 관계가 없고 한화의 이사회에서 결정한 것”이라며 “로펌은 공시 등 관련 절차에 대한 일반적 자문 역할만 담당했을 뿐 승계 방안을 설계하거나 진행한 바 전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한화-고려아연 간 자사주 거래는 시가에 의해 교환된 건으로 교환 목적 또한 한화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사업기회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배임죄가 성립되지 아니한다”고 반박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