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지난 3월 한일 정상회담에 이어 이번 회담에서도 일본의 과거사 외면은 계속됐습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7일 일제 강제동원 등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직접적인 사과 없이 일본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정부의 입장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직전 회담에서의 입장을 되풀이한 겁니다. '우리가 먼저 물잔의 반을 채운 뒤 일본이 성의 있는 호응으로 남은 물잔의 반을 채울 것'이라는 우리 정부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과 102분에 걸친 한일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이 방일하셨을 때 1998년 10월 발표된 일한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과 관련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명확하게 말씀드렸다"며 "이 같은 정부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일 '셔틀 외교' 재개됐지만…일 과거사 외면 '한계'
'일본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하겠다'는 기시다 총리의 발언에는 '식민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를 표명한 내용의 1998년 10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뿐만 아니라 또 '뒷세대 아이들에게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2015년 8월의 '아베 담화'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시다 총리는 일제 강제동원과 관련해 "당시 어려운 건강 속에서 일을 하게 된 많은 분들이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일한 양국 간에 수많은 역사와 경유가 있지만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온 선인들의 노력을 이어받아 미래를 위해 윤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측과 협력해 나가는 것이 일본 총리로서 나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습니다.
여기에 윤 대통령은 한일 정상 확대 회담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한일) 양국이 과거사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으면 미래 협력을 위해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다는 인식에서는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공동 기자회견 후 기자들의 질의응답에서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하는 것이 중요하지 어느 일방의 상대에게 요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전했습니다. '강제동원 해법에 대한 정부의 방침이 바뀔 것이냐'는 질문에는 "바뀌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전반적으로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발언으로 해석됩니다. 양국의 '셔틀 외교'가 재개됐음에도 일제 강제동원 등 과거사 관련 문제들과 관련해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이 없었던 점은 여전히 한계로 지적됩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후쿠시마 오염수 검증에 한국 시찰단 파견 합의
한일 정상은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한국 전문가들의 현장 시찰단 파견에 합의했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시찰단은 5월 내에 후쿠시마로 파견됩니다. 윤 대통령은 회견에서 "과학에 기반한 객관적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는 우리 국민 요구를 고려한 의미 있는 조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기시다 총리도 "일본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리뷰를 받으면서 높은 투명성을 가지고 과학적 근거에 바탕을 둔 성의 있는 설명을 해 나갈 생각이지만, 한국 국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는 점은 잘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의 총리로서 자국민, 한국 국민의 건강과 해양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는 형식의 방류는 인정하지 않을 것을 말씀드린다"고 전했습니다.
이번 회담에선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해 한일 양국이 공동 대응하겠다는 입장도 나왔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른바 한미 간 확장억제 강화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워싱턴 선언'에 일본이 참여하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한미일 핵 확대억지 협의체를 통해 여러 논의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또 기시다 총리 초청으로 오는 19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은 "히로시마 방문 계기에 우리 두 정상은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있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찾아 참배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미일 확장억제 가능성?…"워싱턴 선언에 '일 참여' 배제 안해"
한일 정상은 반도체와 배터리 등 양국의 주력 첨단산업 분야에서의 경제협력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한일 양국이 안보,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긴밀히 협력해 나가야 한다는데 다시 한번 뜻을 모았다"며 "한일관계 개선이 양국 국민에게 큰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확인하고, 앞으로도 더 높은 차원으로 양국 관계를 발전시켜 나아가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기시다 총리도 "금융, 관광, 문화, 예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대화가 가동되고 있다"며 "수출통제 당국 간 대화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서 그 결과 일본 정부로서 한국을 그룹A(화이트리스트·수출관리 우대국)로 추가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에 있다"고 전했습니다.
아울러 이번 회담에서는 우주, 양자, 인공지능(AI), 디지털 바이오, 미래소재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공동 연구와 연구·개발(R&D) 협력 추진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민간 교류 확대를 위해, 한일 지방간 항공 노선을 코로나 19 유행 이전으로 복원하고, 청년층 교류 프로그램을 확대기로 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또 "지난 3월 방일 계기에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과 경단련(일본경제단체연합회)이 설립하기로 합의한 '한일 미래 파트너십 기금'이 정식 출범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