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관리 현황 점검에 나서는 한국 시찰단이 들러리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민간 전문가를 전면 배제한 한국 시찰단은 현지의 시료 채취를 추가로 요구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언론 동행 취재도 불허했습니다. 한일 양국이 합의한 시찰이 '요식행위'로 전락하면서 향후 결과에 대한 신뢰도를 스스로 무너뜨렸습니다.
민간전문가 배제한 시찰단…요식행위 전락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이 오는 21일부터 26일까지 총 5박 6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합니다. 정부는 알프스(ALPS·다핵종제거설비) 성능 등을 중점 확인해 안전성을 평가하겠다는 방침입니다. 국무조정실은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시찰단 일정, 활동 등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이번 발표에는 박구연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과 시찰단 단장을 맡은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참석했습니다.
시찰단은 방일 첫날인 22일 일본 관계기관과 기술회의와 질의응답을 진행합니다. 이후 23~24일 이틀간 후쿠시마 오염수 관리 실태 등을 확인하고 25일에는 현장점검 내용을 바탕으로 일본 관계기관과 심층 기술 회의와 질의응답으로 일정을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박구연 국무조정실 1차장이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전문가 현장시찰단 구성과 관련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 시찰단 구성의 가장 큰 문제는 ‘다양성’이 배제됐다는 점입니다. 통상 논란이 있는 사안 등이 불거져 정부가 검증단을 꾸리면 최대한 다양한 입장을 가진 전문가를 포함시킵니다. 정부 측 의견뿐만 아니라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전문가들도 함께 검증하면서 다양한 시각에서 문제를 점검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시찰단은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국희 단장,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원자시설 방사선 분야 전문가 19명,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해양환경 방사능 전문가 1명 등 총 21명의 정부 측 전문가로만 구성됐습니다.
게다가 정부는 이들 전문가의 명단조차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박 차장은 이에 대해 “참여하시는 (전문가)분들이 해당 부서의 실무자들”이라며 “이분들이 활동을 불편한 마음 없이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언론의 동행취재도 막혔습니다. 정부가 언론의 동행 취재를 요청했지만 일본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이유입니다. 민간 전문가도 투입되지 않고, 언론 취재 길까지 막히면서 정부의 시찰단 활동을 견제·감시할 수 없는 깜깜이 상태가 됐습니다.
2011년 대지진 때 폭발사고로 가동이 중단된 도쿄전력후쿠시마제1원자력발전소. 2016년 3월 촬영한 모습으로 단계적 폐로 작업이 진행중이다. (사진=연합뉴스)
시료 채취 없는 시찰…"무작정 믿으란 거냐"
정부는 오염수에 포함된 방사성물질을 정화하는 알프스 성능 등을 집중 확인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이와 관련해 박 차장은 “일본이 현행 규정, 현장 상황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융통성을 발휘해 줬다”며 “그럼에도 전문 조사단의 안전이라든지 이런 부분도 있기 때문에 가급적 저희도 준수하는 쪽으로 협의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이 안전성을 이유로 접근을 금지할 경우 원하는 만큼 확인하는 수준도 어려울 것임을 시사한 겁니다.
게다가 이번 시찰단은 후쿠시마 오염수 시료 채취를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작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통해 시료를 채취했기 때문에 이를 교차분석하면 된다는 게 정부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IAEA가 사실상 원자력계의 안전성을 홍보해 온 점을 감안하면 철저한 검증과 거리가 멀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울러 정부는 일본 정부에 오염수에 관한 로우데이터(원자료)를 요청할 계획이라며 분석을 통해 신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받은 로우데이터를 공개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현장에 기자들이 수차례 ‘시료 채취를 이번에 할 계획이 없는가’, ‘구체적으로 어디를 방문해 무엇을 검증하는가’, ‘일본이 여름에 방류를 이미 결정한 상태에서 일본으로부터 제공받는 자료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일본의 제공 자료에 대한 신뢰성을 답보할 방안이 있는가’ 등에 대해 물었지만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않으면서 질의응답은 공전했습니다. 이에 기자들은 “국민들이 정부 발표를 보고 안심하겠나”라고 답답함을 토로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