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장인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공동취재)
[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중국이 미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에 대한 전격 판매 금지 조치를 취하면서 미중이 본격적인 갈등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양국 사이에 낀 한국 정부의 고도화된 외교 전략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잇따릅니다.
하지만 정부는 미국·일본과 밀착하고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사실상 전략 부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잇단 정상회담에도 반도체와 관련해 미국의 양해를 받아내지 못하는 등 뚜렷한 성과를 가져오지 못하면서 정부가 사실상 경제적 타격을 자초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격화되는 반도체 패권경쟁…미중에 낀 한국
24일 정치권과 외교가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21일 “심각한 네트워크 보안 문제”를 이유로 마이크론 제품 구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은 매년 3000억달러 이상의 해외 반도체칩을 수입하고 있는데, 외국 반도체 기업에 대해 심사를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결국 미국을 향한 보복 제재를 단행하겠다는 겁니다.
중국이 제재 조치를 통해 보복하자, 미국 의회에서는 ‘중국 기업에 대한 추가 제재’로 응수하겠다고 맞서면서 양국 갈등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미 하원 미·중 전략경쟁특별위원회의 마이크 갤러거 위원장은 23일(현지시간) “미 상무부가 중국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인 창신메모리(CXMT)를 블랙리스트에 추가해야 한다”며 “어떤 미국 기술도 수준과 무관하게 CXMT나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 다른 중국 기업에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양국의 갈등은 곧장 한국 기업으로 불똥이 튀는 모양새입니다. 중국이 마이크론을 택해 제재에 나선 이유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대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정부는 이를 고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마이크론을 대신해 중국에 반도체를 팔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지난달 23일 보도했습니다.
윤석열정부의 미국 의존 스탠스…"경제적 손실은 기업 몫"
미국은 중국의 제재 조치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동맹국과 함께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미국의 요청에 응해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 공급망 재판에 동참할 경우 한국 경제의 타격은 불가피합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임희연 연구위원은 24일 ‘KDI 글로벌경제리뷰’의 ‘주요국의 전략 산업 공급망 재편 정책과 우리 경제의 대외 취약성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한국 반도체와 배터리 생산의 중간재 수출 비중이 23.8%에 달하는 등 중국 수요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며 “대외 충격에 대한 영향을 축소하기 위해 자체적인 공급망 재편 노력이 중요하다”고 다자 간 국제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제적 타격이 가시화된 상황에서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음표가 남습니다.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반도체법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은 미국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 중국에서 생산량을 늘릴 수 없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첨단 반도체의 경우 생산량을 5% 이상 증산할 수 없고 이를 어길 경우 보조금을 모두 반환해야 합니다.
이에 정부는 지난 3월 21일 반도체법 가드레일 조항 세부 규정안에 대한 공식 의견을 제출했습니다. 이 의견서에서 정부는 중국에 반도체 공장이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실질적 확장의 의미를 5%가 아닌 10%로 늘릴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대해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때 주된 의제로 세워서 한국 기업에 대한 면제를 주장해 받아냈어야 한다”며 “협상 기회를 놓치고, 피해를 불가피한 상황으로 몰고 온 것 아닌가”라고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도 “정부가 중국과는 단절로 향하고 미국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정책적 스탠스를 취하면서 기업들이 경제적인 비용을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