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총파업에 나서 산업계 하투를 예고했습니다. 금속노조 요구 중 국회 본회의에 회부된 소위 노란봉투법(노동법 제2조, 3조 개정안)이 가장 뜨거운 쟁점입니다.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금속노조가 쟁의 역량을 결집하고 나섰습니다. 경영계가 불법 파업을 조장한다며 법안을 반대하는 속에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여론전까지 얽혀 극한 대립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31일 오후 2시 서울 경찰청 앞에서 총파업대회를 열었습니다. 노조는 전체 조합원에게 주야 4시간 이상 파업에 돌입하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이에 이날 일손을 놓은 조합원 수는 약 5만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조합원 2만여명은 전국 12곳에서 동시에 열린 금속노조 총파업에 참여했습니다. 경찰청 앞에는 서울지부, 인천지부, 경기지부, 기아자동차지부 등이 참여해 약 5000명이 운집했습니다.
금속노조는 “이번 총파업은 주 69시간제 등 노동개악 저지, 노조법 2·3조 개정,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투쟁”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7월 민주노총 총파업 등에 나설 것이라며 윤석열 정권 퇴진도 요구했습니다.
하투에 불지핀 노란봉투
노조 요구 중 경영계와 가장 민감하게 얽힌 현안은 노란봉투법입니다. 금속노조는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사례를 들어 “정부가 노조법 개정을 가로막으며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노란봉투법 강행 처리 방침인 야당에 힘을 실어주며 정부여당 및 경영계와 충돌하는 양상입니다.
앞서 경영계는 경제단체들을 앞세워 “국민 대다수는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노동 개혁이 필수라고 생각한다”며 여론전에 나섰습니다. 고용노동부는 기아차 지부의 파업에 대해 “노동위원회 조정 절차, 쟁의행위 찬반투표 등을 거치지 않은 불법 파업”이라며 정권 퇴진 등 금속노조의 정치적 쟁의 성격도 공격했습니다.
노란봉투법이 6월 국회 숙의과정을 거쳐 월말쯤 처리될 듯 보여 찬반여론의 대립각이 날카롭습니다. 노란봉투법은 2014년 법원이 쌍용차 사태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47억원 손해배상액 청구 판결을 내리자 한 시민이 노란봉투에 성금을 담아 전달한 데서 총 15억원까지 모금이 이뤄진 것이 유래입니다.
지난 2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본회의로 직회부한 법안은 노사협상 범위에서 사용자 정의를 확장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입니다. 정부여당과 경영계는 이 법안이 불법 파업을 조장한다며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반면 야당과 노동계는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노동자를 옥죄는 반헌법적 노동탄압이라며 당위성을 주장합니다. 다수 의석을 가진 야당에 의해 법안은 국회를 통과할 듯 보이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관측이 높습니다. 이에 금속노조가 법안 처리를 위한 동력을 모으는 것입니다.
노조법 제3조 개정안은 불법 파업인 경우 손해배상 청구할 수 있는 규정을 제한하는 쪽으로 바꿉니다. 이 조항은 금속노조가 직접적으로 결부된 현안입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집행부 5명을 상대로 470억원 규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사측은 작년 6월2일부터 7월22일까지 하청지회가 진행한 파업으로 수천억원대 손해를 봤다는 입장입니다.
31일 경찰청 앞에서 총파업대회를 개최한 민주노총 금속노조. 사진=이재영 기자
정쟁에 휘말린 노동계 현안
소송은 지난 3월 첫 변론 기일이 잡혔으나 하청지회 요청에 5월로 연기됐다가 최근 사측이 요구해 9월까지 미뤄졌습니다. 금속노조는 사측에 소송 취하를 요구하고 있으며, 인수합병(M&A)을 거쳐 대우조선해양 지배주주가 한화그룹으로 바뀜에 따라 소송 취하 결정권도 이동했습니다.
여야는 노란봉투법을 두고 첨예하게 맞섭니다. 간호법부터 시작된 야당의 법안 강행 처리 기조가 노란봉투법까지 이어졌습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은 이날 열린 본회의에서 재표결됐지만 부결됐습니다. 재상정된 법안은 국회 의석 과반출석에 3분의2 이상 찬성표가 필요해 부결될 것은 예상됐었습니다.
그 결과를 두고 여야는 총선에 미칠 여론 향방에 주목합니다. 노란봉투법도 비슷한 생리가 작용합니다. 금속노조가 쟁의 역량을 모으는 것은 여론 지지를 얻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도 부담을 안기려는 의도로도 비칩니다. 금속노조는 이날 하루 파업에 그치지 않고 쟁의 행위를 이어갈 방침이라 산업계 하투도 불가피해 보입니다.
한편, 노조법 제2조 개정안은 근로자, 사용자, 사용자단체, 노동조합 등에 관한 용어 정의에서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입니다. 현재 사용자는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자’로 규정돼 있습니다. 여기에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는 조항을 추가합니다. 경영계는 법안대로면 하청 노조 교섭에도 발주업체가 참여해야 해 무수한 분쟁이 생길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