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조카가 결혼을 했습니다. 그 전부터 전셋집을 얻어 같이 사는 모양인데 요즘 세상에 삼십대 중반의 남녀에겐 어색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녀석, 여태 한번도 그런 적 없더니 지난겨울 자기 엄마를 통해 저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신혼집 마련을 위해 아파트 분양에 청약해 당첨됐는데 계약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둔촌주공 재건축 분양이 실패했단 소식이 홍수처럼 쏟아지던 때, 부족한 종잣돈으로 무리해서 집을 장만하는 상황이라 망설였을 겁니다.
당첨된 아파트와 자금사정 등을 전해듣고 몇 년간 고생하겠지만 계약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 이유도 설명했고요.
하지만 결국 포기했더군요. 이해하면서도 안타까웠습니다. 그런 공포국면이 아니었으면 청약가점 낮은 조카에게까지 순번이 돌아갈 곳이 아니었으니까요. 그 이후 수도권 분양시장은 회복세를 보였고 분양가는 더 올랐습니다.
조카가 다시 내 집 마련에 대해 물어온다면 이젠 어떤 조언을 해야 할까요? 사실 제가 가진 답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살고 싶은 동네 근처에 가용자금에 맞는 적당한 아파트를 골라 전세 끼고 매입하라고.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그 집에서 살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라도 집을 지금 시세로 잡아 놔야 5년 후든, 10년 후든 진짜 내가 살 수 있는 내 집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맞벌이라서 출산을 조금 미루면 돈은 모으겠지만 돈을 다 모아서 집을 사려면 그때 집값은 더 올라있겠죠. 돈을 모아도 내 집 마련이 어렵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래서 ‘선취매’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접근법이 어떻든 세상은 이걸 ‘갭투자’라고 부릅니다.
반지하 월세 사는 사람에겐 창으로 해 드는 2층집 월셋방이 꿈이고, 2층집 월세 세입자는 전세를 꿈꿉니다. 전세대출 상환이 눈에 보이면 내 집 마련도 계획할 수 있겠죠. 그땐 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사거나, 전세 끼고 집을 살 수 있을 테니까요.
전자의 경우 내 몫 반, 은행 몫 반인 집에 살면서 내 몫을 늘려가면 되고, 후자는 이자 부담 없이 세입자에게 돌려줄 전세보증금만 열심히 모으면 됩니다. 사다리 타고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 언젠간 내가 들어가 살 수 있는 집이 될 겁니다. 월세 살다가 곧바로 집 장만하는 경우는 드무니까요.
그런데, 전세사고 터졌다고 제도 자체를 갈아엎을 모양입니다. 전세보증금을 에스크로로 맡겨야 한다면, 전세는 점차 사라지겠죠. 보증금을 예치해두고 전세 놓을 수 있는 집주인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한국은행이 집계한 작년말 기준 가계신용잔액은 1867조원입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추산한 전세보증금 규모는 1058조원이라는군요. 전세보증금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채죠. 전세 놓기 어려워진 집주인들은 대출을 받아 월세로 돌리거나 집을 팔 겁니다. 자연스럽게 가계대출이 급증하겠군요. 둘을 더하면 3000조에 육박합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4월까지 전세보증사고금액은 1조830억원입니다.
사다리에 문제가 있으면 고쳐 쓰면 될 일입니다. ‘해경에 문제가 있으니 해경을 해체하겠다’는 식의 접근법은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정부의 의도가 무엇이든, 주거 사다리를 걷어차진 않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