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경기 부진과 실적 하락, 금리인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기업들의 채권 발행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특히 유동성 호황을 맞았던 팬데믹 기간에 비해 ESG 채권 발행을 통한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눈에 띄게 감소했습니다. 높은 금리 탓에 회사채 발행 여건이 나빠진 가운데 ESG 채권 붐 이후 그린워싱 논란도 불거져 시장 정화 작업이 이뤄지는 현상으로 풀이됩니다.
ESG 채권 발행 붐 지났다
8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올들어 이날 현재까지 ESG 채권 발행기관은 39개입니다. 전년동기간 63개에 못미칩니다. 발행 종목 수도 229개로 전년 동기 276개보다 감소했습니다. 신규상장금액은 약 28조원으로 전년동기 26조원보다 늘었습니다. 다만 금액증가가 주로 사회적채권에서 이뤄졌는데 발행기관 대부분은 공기관입니다. 비금융 민간기업의 발행 횟수가 줄어든 현상이 뚜렷합니다. 유동성 호황으로 ESG 채권 발행 붐이 일었던 2021년 동기간에 비하면 작년부터 위축된 흐름이 두드러집니다. 2021년 동기간에 발행기관 수는 83개나 됐습니다. 종목 수는 286개였습니다. 특히 발행 금액이 41조에 달해 작년과 올해 20조원대에 머문 것과 극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ESG 채권은 환경, 사회, 지배구조 개선 측면의 투자처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입니다. 일반 회사채보다 상장수수료가 면제되는 등 발행 조건이 유리합니다. 팬데믹 기간 국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친환경 정책을 강화하고 관련 유동성 지원책에 나서면서 ESG 녹색채권 발행도 급증했습니다. 기존에 공기관 위주로 발행이 많았던 사회책임투자 채권에서 비금융 민간기업들의 참여가 활발한 녹색채권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던 것입니다.
이날 기준 ESG 채권 상장 잔액을 보면, 비금융 민간기업들은 단연 녹색채권에 몰려 있습니다. 금액 상위부터 포스코케미칼이 사명을 바꾼 포스코퓨처엠이 총 1조원어치 녹색채권(6종목) 상장 잔액을 기록 중입니다. 이어 LG디스플레이(9450억원), 한화(6100억원), 현대제철(5000억원), SK에코플랜트(4000억원), HD현대오일뱅크(4000억원), 현대자동차(4000억원), SK에너지(3800억원), 한화솔루션(3750억원), 현대모비스(3500억원), SK(3200억원), 기아(3000억원) 순으로 상위권에 포진해 있습니다. 이런 녹색채권은 올들어 현재까지 신규 발행기관 수가 11개로 전년 동기간 22개보다 절반이나 줄었습니다. 또 종목수도 같은 기간 44개에서 26개로 감소했습니다. 신규상장금액 역시 3조9310억원에서 2조2273억원까지 작아졌습니다.
녹색채권 외 ESG 채권은 민간기업의 참여가 저조합니다. 사회적채권의 경우 현재 상장 잔액 규모 중 상위 20위 내 비금융 민간기업은 SK하이닉스만 눈에 띕니다. SK하이닉스의 잔액 규모는 4400억원입니다. 또 지속가능채권은 20위권 내 LG화학(8200억원), KT(3800억원)만 확인됩니다.
회사채 발행 여건 악화, 시장 정화작업도
시장 전반적으로 금리가 상승해 자금 조달 비용이 오르면서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여건이 좋지 못합니다. 이에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줄이는 대신 단기차입 등 대체 조달수단을 늘리는 추세입니다. 비슷한 이유로 ESG 채권 발행 역시 줄어들었습니다. 한국전력의 적자 확대에 따른 한전채 발행 급증으로 기업들의 채권 조달이 어려워진 측면도 있습니다. 레고랜드 사태로 신용경색이 나타난 것도 회사채 발행에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일각에선 기업이 환경성과를 과대포장하는 그린워싱 논란이 불거져 시장에서 옥석고르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진단도 내립니다. 그린워싱에 따른 시장 신뢰도 하락 이후 건전화 자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실제 정부는 최근 ESG 평가기관의 투명성과 평가대상 기업과의 이해충돌 가능성을 낮추기 위한 제도장치를 마련하는 등 ESG 채권 발행 환경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달비용률 상승 및 경기 둔화에 따른 수익성 저하 등의 영향으로 기업의 재무건전성은 악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앞으로 금리 상승이 지속되는 경우 차환에 따른 추가적인 이자 부담으로 상장기업의 이자 비용이 증가하고 재무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되고 자금시장을 둘러싼 일부 위험요인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이 급격히 개선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시장의 잠재적인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기업의 조달구조를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