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7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반도체 국가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윤혜원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8일 반도체 경쟁을 국가 총력전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응할 방안을 주문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로 대변되는 ‘주요 2개국(G2)’의 반도체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민관의 긴밀한 협력을 강조했는데요. 다만 정부가 반도체 경쟁에서도 미국에 기울 조짐을 보이면서 대중국 전략이 상대적으로 부실해질 여지는 남게 됐습니다.
윤 대통령 반도체 전략로드맵도 '규제 완화'
윤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17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반도체 국가전략회의를 주재했습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반도체 경쟁은 산업 전쟁이고 국가 총력전”이라며 “그래서 민관이 원팀으로 머리를 맞대고, 이 도전 과제를 헤쳐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날 회의는 글로벌 경쟁 격화로 위기에 처한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열렸습니다. 윤 대통령도 반도체 산업이 당면할 위기가 심각하다고 보고 이를 꼭 타개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반도체 경쟁을 ‘전쟁’에 비유하기도 했죠. 특히 반도체가 산업뿐 아니라 안보 경쟁으로도 확산하는 양상이라고 봤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반도체와 이차전지라는 두 개 전선에서 치열한 세계적 산업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씀드렸다”며 “그뿐만 아니라 군사 분야에 인공지능(AI)이 접목되며 반도체가 그야말로 안보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우리 반도체 산업에 대해 많은 국민들께서 자신감도 가지고 계시고 기대도 크지만, 정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전쟁”이라고 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우리 반도체 산업이 살아남기 위해 민간 혁신과 정부 전략이 어우러져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그는 “기업과 투자, 유능한 인재들이 다 모이도록 정부가 제도와 제도 설계를 잘하고, 인프라를 잘 만들어야 된다”며 투자 기업에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K-칩스법’ 국회 통과와 정부의 반도체 관련 대학 규제 완화 등을 사례로 들었습니다.
지정학 리스크 '확산일로'…중국 리스크 언급 없었다
이날 정부와 민간을 주축으로 하는 대내 전략 외에도 주목받은 지점은 대외 전략이었습니다. G2의 반도체 갈등입니다. 대통령실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거대한 지각변동 가운데 우리 반도체 산업이 마주하고 있는 과제들이 산적한 상황”이라고 짚었는데요.
또 대통령실은 “메모리반도체 부문에서 20여년간 우리나라가 글로벌 선두를 유지하고 있지만, 경쟁국들의 추격이 거세지고 있다”며 “미중 패권 경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도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G2의 반도체 경쟁과 관련해 윤 대통령이 제시한 방향성은 미국을 포함한 우방국과의 협력입니다. 그는 “최근 지정학적 이슈가 기업들의 가장 큰 경영 리스크가 되고 있는데, 이것은 기업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며 “국가가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긴밀한 소통을 통해서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했습니다.
대중국 전략에 대한 언급은 이날 회의에서는 없었습니다. 대통령실은 이날 회의에서의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기존 반도체 산업 전략을 보완할 계획이라고 예고했는데요. 이런 의의를 고려하면, 향후 글로벌 반도체 경쟁을 두고 한국이 중국보다는 미국에 치중한 전략을 내놓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습니다.
대통령실이 전날 발간한 국가안보전략서는 정부의 미중 사이 전략적 모호성 폐기 행보에 무게를 더 실어주고 있습니다. 전략서는 북핵 대응을 위한 ‘새로운 수준의 한·미·일 협력 제고’를 명시했는데요. 국가별 언급 순서는 ‘일본-중국-러시아’ 순으로 표기됐습니다. 문재인정부 당시 중국을 일본보다 앞세운 것과 다른 대목입니다.
윤혜원 기자 hwy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