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KT(030200)가 오는 30일 열리는 임시주주총회 일정을 공시하며 대표이사 후보 자격요건의 항목 변경안을 공개했습니다. KT 최고경영자(CEO) 응모 자격 중 하나인 정보통신분야(ICT)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산업전문성'으로 바뀌었습니다. ICT 전문성이 빠진 것이 아니라 산업 전반 전문성으로 확대됐다는 KT 설명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KT의 근간인 ICT 전문성 약화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신규 선임되는 사외이사들도 7명이나 되지만, ICT 전문가들은 아닙니다. 앞서 진행된 2월 CEO 공개 경쟁 공모에서는 현재의 정관에도 불구하고 ICT 경력이 없는 친정권 인물들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CEO 후보군의 자격요건이 여기서 더 넓어지면, 낙하산 인사하기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ICT 비전문가도 KT 수장 가능해지나
KT 정관 제5장제32조 항목을 보면 '이사회는 다음 각호의 요건을 고려해 대표이사후보심사기준을 결정하고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는 이에 따라 대표이사후보 심사대상자들을 심사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여기서 말한 고려사항은 △경영·경제에 관한 지식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경력·학위 △기업경영경험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과거경영실적·경영기간 △기타 최고경영자로서 자질과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요소 △정보통신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평가할 수 있는 요소입니다.
하지만 KT는 임시주총에서 정관변경을 통해 CEO 자격요건을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기업경영 경험과 전문 지식 △대내외 이해관계자의 신뢰 확보와 협력적 경영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역량 △글로벌 시각을 바탕으로 기업의 사업 비전을 수립하고 임직원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리더십 역량 △산업 환경 변화를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관련 산업·시장·기술에 대한 전문성으로 변경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보통신분야'가 '산업' 전문성으로 확대된 것인데, 이말인즉슨 ICT와 관련된 경력이나 자질이 없어도 CEO 자격 요건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KT는 이에 대해 "정보통신분야 전문성이 빠진 것이 아니라 산업 전반 전문성으로 확대된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기존 통신뿐만 아니라 금융, 미디어, 부동산 등 그룹 전반 사업에 대한 이해와 유관 경험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결과라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이는 KT가 그간 강조해 오던 것과 배치됩니다. KT는 2월 차기 CEO 공개경쟁 모집 공고 당시에도 지원자들 자기소개서에 '정보통신분야 관련 경력'과 함께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이를 바탕으로 업무를 수행한 이력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 요건이 있기 때문에 낙하산 인사가 올 수 없다는 점도 강조해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업계에서는 CEO의 ICT와 디지털 산업에 대한 이해도와 통찰력 부족이 KT 경영공백 장기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KT는 그간 정보통신 사업을 기반 삼아 인공지능(AI)·디지털전환(DX)산업 등 디지털 신규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해온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KT 광화문 이스트 사옥. (사진=뉴스토마토)
사외이사 후보도 텔코 전문가 없어…낙하산 CEO 우려 모락모락
CEO와 함께 회사의 방향성을 잡아 갈 사외이사에도 ICT 전문가는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현재의 사업 근간인 텔코(통신)부문의 전문가가 공백으로 남을 여지가 커졌습니다. KT의 신임 사외이사 후보자는 곽우영 전 현대자동차 차량IT개발센터장, 김성철 고려대 교수, 안영균 세계회계사연맹(IFAC) 이사, 윤종수 전 환경부 차관, 이승훈 KCGI 글로벌부문 대표 파트너, 조승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최양희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입니다. 곽우영·김성철 후보자는 KT의 사업분야와 관계는 깊으나 신사업 전문가들입니다. 안영균 후보자는 회계 전문가, 윤종수 후보자는 ESG 전문가, 이승훈 후보자는 지배구조 전문가, 조승하 후보자는 경영학자입니다. 박근혜정부 시절 미래창조과학부 전 장관을 역임한 최양희 사외이사 후보자도 AI 전문가로 텔코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현재 2년의 임기가 남은 김용현 이사회 의장은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출신으로,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입니다.
KT 말대로 사업영역이 확장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이 통신 기반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 추진해온 디지털플랫폼기업(디지코) 전략도 통신에 기반해 디지털 전환을 주도하는 모델입니다. 경쟁사들이 ICT 전문가를 수장으로 두며 경영에 나서는 것도 신사업들이 통신과 연계돼 진행되는 까닭입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사업의 연속성과 고도화를 고려할 때 통신산업 특유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는 경영진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이번 CEO 자격 정관 변경이 낙하산 인사를 불러올 수 있는 정당성을 만들어 줬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특히 2월 차기 CEO 후보 공개 경쟁 공고 당시 기업경영은 물론, ICT 분야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전혀 없는 친정권 인사가 지원서를 낸 전례도 있어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KT 새노조는 관계자는 "정보통신분야 자체도 광범위한데, 정권의 외압 논란이 부는 이 시점에 정관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며 "CEO 공모일정에 맞춰 정관을 변경한 것과 관련해 낙하산 CEO를 위한 사전 작업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KT의 임시주총을 앞두고 업계의 주목도도 높아지고 있는데요. 대체로 정관변경의 배경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거두지 못하는 가운데, 임시주총 후의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의견입니다.
KT 사외이사 후보에 등록했던 한 인사는 "좋은 경영자를 영입하기 위해 ICT 전문가 조건을 뺀 것이라면 정관변경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대표이사 후보로 누가 이름을 올리는가를 보면 정관 변경의 배경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K-비즈니스 연구포럼 의장인 한영도 상명대 교수는 "정관 변경 시점이 오해받기 쉬운 시점이라는 것이 아쉽지만, 이사회에서 공정하고, 심도있게 산업의 전문성을 평가한다면 현재의 우려를 씻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