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 중요한 것은 한낱 싱하이밍이 아니라…

입력 : 2023-06-16 오전 6:00:00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중국 정부가 윤석열정부에 통보했다는 이른바 '4불가(不可)론' 보도를 “전부 거짓”이라고 부인한 바 있습니다. 지난달 22일 방한한 류진쑹 중국 외교부 아시아 담당 국장이 우리 외교부에 △(대만 문제 등) 중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면 한중 협력 불가 △한국이 친미·친일 일변도 외교 정책으로 나아갈 경우 협력 불가 △현재와 같은 한중 관계 긴장 지속 시 고위급 교류(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 불가 △악화한 정세 아래 한국의 대북 주도권 행사 불가 등 4불가 방침을 통보했다는 <한겨레> 보도가 “존재하지도 않았고, 있었던 대화도 아니”라고 무지른 겁니다.
 
그런데 이후 상황은 김 차장의 단호한 부인과는 크게 다릅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공식 브리핑에서 ‘4불가론’ 관련 질문에 “이미 중국은 핵심 관심사에 대해 엄숙하고 전면적으로 엄정한 입장을 표명했다”고 답했습니다. ‘엄정한 입장’이라는 말이 눈에 걸리는데, 마오 대변인은 “한국 측은 반드시 문제의 소재를 깊이 인식하면서 그것을 진지하게 대하고…”라며 ‘문제의 소재’라는 표현도 썼습니다.
 
정부는 부인한 4불가론, 싱하이밍 대사가 확인
 
그런데 한중 간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은 ‘4불가론’과 정확히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싱 대사는 15분간 발언 초반에 “대만 문제는 중국 핵심 이익 중의 핵심 이익이고 중한관계의 기초와 관계돼 있다”며 “우리는 한국 측이 약속을 제대로 지키고 대만 문제 등에서 중국의 핵심 우려를 확실히 존중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는데, 이 부분은 ‘4불가론’ 중 첫 번째인 대만 문제에 해당합니다.
 
또 한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 확대 원인의 하나로 “‘탈중국화 추진을 시도한 것이 더욱 주요한 원인”이라고 거론한 뒤, “한국의 중국과의 관계를 처리할 때 외부 요소의 방해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며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고 한 대목은 윤석열정부의 ’친미·친일 일변도 외교 정책‘에 대한 두 번째 ’불가‘에 조응합니다.
 
결국 싱 대사는 ’4불가론‘의 핵심인 윤 정부의 '미국 편향' 외교에 대한 중국 정부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외교관으로서는 부적절하기 짝이 없는 고압적이고 오만불손한 방식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단골 멘트까지 역이용해 의도적으로 파장을 키우면서 말입니다.
 
싱 대사가 아무리 한국말에 능하고 남북한 상황에 해박하다고 한들 그 발언이 개인 차원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정부가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까지 전면에 나서, 사실상 그의 교체를 요구하는 것은 반중 정서가 강한 보수층에 호소하려는 국내 정치용입니다.
 
그 발언이 아무리 심각하다 해도 기본적으로 외교부 차원에서 대응하면 되는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직업 외교관 출신인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이 "우리나라 외교안보를 총괄적으로 조정해 나가는 자리를 맡고 있는 입장에서 주한중국대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의 당당함과 국격에 잘 맞지 않는다"고, 국격을 거론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미국 중국에 대결 일변도에서 대결-협력 구도로
 
지금 우리가 곱씹어 봐야 할 것은 한낱 싱하이밍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윤석열정부의 미국 일변도 정책이 현재의 국제정세에 조응하느냐 여부입니다. 
 
토니 블링큰 미 국무장관 (사진=뉴시스)

미국은 트럼프 정부 이후 현재까지 계속돼 온 중국에 대한 대결 일변도 정책을 대결과 협력으로 바꾸고 있습니다.오는 18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가 장관에 취임한 이후 처음이자, 트럼프 행정부 시절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이 지난 2018년 10월 다녀온 뒤 약 4년 8개월만입니다. 미 국무부는 "미중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을 바꾸거나 어떤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는 의도로 (블링컨이) 중국에 가는 게 아니"(대니얼 크리튼브링크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라는 입장입니다. 미중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요동치겠지만, 4개월 전 블링큰 장관의 방중 계획이 '정찰 풍선' 사건으로 무산된 데 반해, 이번에는 '쿠바 도청기지' 문제가 불거졌음에도 예정대로 베이징에 간다는 점에서 미국과 중국의 변화 의지를 느끼게 합니다.
 
'아시아 차르' 커트 캠벨 조정관 "가드레일 만들어 신냉전 피하고 싶다"
 
지난 7일 커트 캠벨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의 발언도 주목할 만합니다. 미국 외교가에서 대표적인 대중 강경파이자, 바이든 행정부의 '아시아 차르'로 불릴 정도로 영향력을 인정받는 그는 "의도하지 않은 충돌을 피할 수 있는 가드레일을 만들어 '신냉전을 피하고 싶다'는 신호를 (중국에) 보내려고 하는 게 미국의 의도"라고 말했습니다. "양자 차원에서 미·중 관계의 지배적 프레임은 확실히 경쟁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경쟁을 책임 있는 범위로 한정하고 대결로 비화하는 것을 피하고자 한다"는 겁니다.
 
이 같은 변화는 미국의 대중 디커플링 전면화 능력 부족에 기인한 바가 커 보입니다. "미중 경제는 마치 샴쌍둥이처럼 나눌 수 없다"며 방중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미국의 대표적 첨단기업 대표자들이 '디커플링'을 반대하고 있으며, 최근 전 세계적 유행어가 되고 있는 '디리스킹'은 애초 유럽연합이 그 진원지입니다.
 
독일, 프랑스가 주도하는 유럽연합은 중국의 후진적인 '경제적 강압'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대응하면서도 전면적인 대결은 원하지 않고 있으며, 브라질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더 노골적입니다. 브라질은 중국과 "양국 간 무역 때 미국 달러를 통하지 않고 자국 통화인 위안과 헤알로 결제하겠다"며 '탈달러'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으며, 중동의 대표적 미국 맹방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자국을 방문하고 떠난 다음 날 바로 중국과 100억달러 규모의 투자 합의를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한 바 있습니다.
 
윤석열정부는 집권 이후 지나칠 정도로 미국과 일본 편향외교에 올인해왔습니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지금의 국제정세를 보면 자칫 한국이 국제적으로 디커플링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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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방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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