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17년 36%였는데 2022년 49.7%로 급상승했다. 국가 채무 비율이 50% 가까이 되는데 이대로 가면 2070년 쯤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한 그리스와 비슷해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지난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한 여당 의원이 재정준칙 도입을 위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의 필요성으로 내세운 논리입니다. 한술 더 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재정준칙 도입의 필요성을 거들고 나섰죠.
경기 암흑기와 나라곳간의 세수 확보가 어려운 현실에서 툭하면 등장하는 것이 '국가부도 겪은 그리스' 사례입니다. 그리스는 2010년 국가부도에 몰리는 등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에 빠진 대표적인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국가 중 하나입니다.
13년 전 국가부도를 겪은 그리스가 과연 국가 채무 탓에 IMF를 맞았을까요. 재정파탄의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그리스의 지표를 뒤져보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가 2001년 유로존에 가입할 당시 국가채무 비율은 GDP 대비 100%를 넘어선 상황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7년 간 103%를 유지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국가채무가 2배가 넘는데 그때는 왜 파산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리스의 채무비율이 147%로 뛸 때는 오히려 2010년 금융위기 때입니다. 2011년에는 174.6%를 보이다 2020년에는 205.7%을 기록한 후 2022년 170%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0년에는 우리나라보다 국가채무가 4배인데도 사상 최대 자금 유입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국가채무비율이 높을수록 자금조달이 어렵다는 정부의 말과 상반됩니다.
그리스가 실시한 15년 만기 국채 발행에는 140억 유로(약 18조원)의 매수세가 몰리면서 부채 위기 이후 최장기 국채 발행에 사상 최대 자금이 몰렸습니다.
오히려 그리스 경제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더욱 높아진 계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국가 채무가 172%를 기록했는데 자금조달비용이 '안정적'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 사태는 외환보유액이 적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리스의 외환보유액이 적은 배경은 경상수지 적자가 만성적인 나라입니다. 관광·해운 등으로 먹고사는 그리스는 독일로부터 수입하고 마땅히 외화 벌이할 수 있는 제조업의 수출품목이 없습니다.
지난달 기준으로 그리스의 외환보유액은 125억 유로로 한화 약 17조8000억원 가량에 불과합니다. 이는 GDP의 6%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외환보유액은 외국인 투자의 자금이 빠질 경우 이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통합니다.
유로존의 다른 나라를 볼까요. 스페인은 2000년 57.8%의 국가채무 비율를 기록한 후 2007년 35.8%로 상승곡선을 그렸습니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2012년 90%, 2014년에는 100%대로 올라섰습니다.
2000년 57.8%로 국가채무 비율이 높은 스페인은 왜 부도가 나지 않았을까요. 심지어 지난해에는 110%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2000년 59.3%로 국가채무가 높은 독일의 경우는 금융위기 때 82.2%를 기록한 바 있습니다.
독일은 2019년 59.5%를 기록한 후 지난해에는 66.3%의 국가채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위기가 왜 발생하지 않을까요. 만성적으로 경상수지 흑자 국가인 배경 때문입니다. 즉, 외환보유액이 탄탄하다는 얘기입니다.
종합하면 유로존 위기가 재정적자와 무관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국가채무 비율이 급증한 이유는 금융위기의 결과로 금융위기의 원인이 아닙니다. 과학적으로 접근하자는 윤석열 정부가 왜 경제분야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을까요.
지난달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210억달러입니다. 이 중 우리나라 국채를 보유한 외국인이 200조원 수준입니다. 외국인 국고채를 달러로 할 경우 1565억 달러입니다.
극단적으로 1565억달러가 빠져나가도 2645억달러가 남습니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외환보유액입니다. 투자자금의 안전한 회수를 고려해 국가 신용등급이 일본보다 높은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왜 국가채무 불안감을 조성하면서 근거도 없는 3%이내 재정준칙을 법제화하려는 걸까요. 현행 시행령인 재정준칙이 법률화될 경우 기재부만의 막강한 권한 행사로 대통령조차 손을 쓸 수 없습니다.
재정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결국 서민들은 사적 금융에 손을 벌려야합니다. 왜 '3%'가 나왔는지 구체적인 이론·근거도 없는 재정준칙 법률화의 위험성에 대해 냉소주의로 일관해서는 안 될 문제입니다.
이규하 경제부장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