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시장 ‘개입’…‘자유’ 기조는 실종

라면값 내려라 기업들 압박…경제부총리 엄포에 도미노 인하
물가 관리 정책이 유효하지만 보여주기식 통제에 매달려
“개별 가격 통제해 물가 잡기, 가장 반시장적”

입력 : 2023-06-28 오후 3:48:37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정부가 제품 판매가격을 내리라며 무차별적으로 기업들을 압박하고 나서자 반시장적 정부개입이란 비판이 나옵니다. 앞서 금융지주 인사 개입 등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낙하산, 관치 논란도 불거져 자유시장 논리를 앞세웠던 윤석열정부 정책기조와 정체성이 모순된다는 지적입니다. 모순된 정책 기조는 시장에 부정적인 시그널을 보냅니다. 재계는 모순된 윤정부의 정책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강압적 시장 개입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근본처방이 될 수 없어 포퓰리즘에 그친다는 게 전문가들 시각입니다.
 
28일 경제계에 따르면 규제 인하, 민간 주도, 공정, 효율성 등을 국정 비전으로 내세웠던 윤석열정부가 금융지주 CEO 인사 때부터 노골적인 압력을 행사하며 시장 반감을 사고 있습니다. 최근 물가 잡기 명목의 라면값 등 특정 상품가격 통제가 이뤄져 반시장정책 수위가 높아졌습니다. 경제부총리의 가격 인하 엄포 후 농심과 삼양 등의 라면값 인하가 이어졌습니다. 이날 롯데가 추가적으로 과자값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밀가루 업계도 가격 인하를 검토 중입니다.
 
보여주기식 물가잡기 반시장 행보
 
경제계 관계자는 “단편적으로는 이런 것들이 서민물가에 도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부 등쌀에 못이겨 가격을 내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 “기업 생리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따로 이윤을 보전하려 할 것이고 거시경제 물가 측면에도 별 도움이 안된다”고 꼬집었습니다. 일례로 물가 비중이 큰 것은 기름값인데 국제유가가 전보다 내렸지만 유류세 인하분이 복구돼 체감물가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입니다. 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금리나 통화량 등 거시경제 대책에 집중해야 하지만 국민적 관심사인 지엽적인 부분에만 집착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금리를 조정하는 것은 수출실적 등에 타격을 줄 수 있어 상품가격 통제를 통한 가시적 효과에 치중하는 것이란 관점입니다.
 
 
한때 기름값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정부는 정유사와 대리점, 주유소간 도매가격 공개를 밀어부쳤습니다. 그러다 유가가 내리고 관심이 식자 관련 방안도 물밑으로 내려갔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도매가격 공개가 기름값 인하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며 “불확실한 정책을 버리지 않고 묵혀둔 것은 정부가 라면값을 통제하듯 기름값 인하가 필요하면 언제든 정유사를 압박할 카드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가격 통제는 파급효과가 일시적입니다. 파급효과가 사라졌을 때 반작용도 고려해야 합니다.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는 “관료들이 개별 가격을 통제해서 물가를 잡겠다는 사고를 하는데 개도기적 발상이며 가장 반시장적인 이야기”라고 논평했습니다. 이어 “선진 경제에서 물가 관리는 통화정책으로 하는 것”이라며 “이명박정부 때도 50여개 상품 가격을 통제하려 했었는데 일시적으로 효과 보는 것 같지만 나중에 (가격이)다시 올라간다”며 “가격을 통제할 수밖에 없는 극단적 상황이 아니고서야 물가관리를 가격통제로 하려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이고 반시장적이며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소유분산기업, 강압적 인사 개입도 논란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인사 개입 논란도 진행형입니다. 정부는 최근 ESG 평가기관에 대한 투명성과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가이던스를 마련한다면서 규제 방침을 내비쳤습니다. 이후 KT가 새 사외이사 후보를 간추렸는데 김앤장 법률사무소 상근 고문이면서 대통령 소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 등 정권과 연결된 후보들이 다수 포함됐습니다. 그럼에도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위해 전관 출신 인사를 지양해왔던 ESG 평가기관들이지만 전과 다르게 반대 의견이 적습니다. 최근 인천국제공항과 수자원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 인사에선 윤석열 캠프 출신 정치권 인사들이 내려와 논란을 키웠습니다.
 
강정민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주요 인사들은 소유분산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은행의 공공재적 특성을 강조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모럴해저드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에는 적어도 그 절차와 방식이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소위 스튜어드십이라는 것이 작동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금리인상기에 최대 실적을 낸 은행권을 비판하는 자리에서 은행은 공공재 측면이 있다며 은행 과점체제 폐해를 시정할 수 있는 경쟁 시스템 강화 방안을 마련할 것을 금융위에 지시했다. 이는 윤 대통령 자신이 내세우고 있는 민간자율 정책기조를 스스로 부정하는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박상인 교수는 “소유분산기업은 (지배구조상)자체 문제보다 오히려 국민연금의 문제”라며 “국민연금같은 기관투자자들이 독립성을 가지고 주주로서 적극적 역할을 하지 않는 이상 해결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또 “금융지주는 규제 산업이라 정부로부터 규제적인 측면에서 이득을 챙겨가고 하다보니 금융관료가 선임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금융은 당연히 규제해야 하지만 그것이 공익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아니고 정권이나 정치인들이 원하는 걸 들어주고 그 규제를 다시 피규제 금융기관에게 유리하게 해주는 식의 유착들이 너무 많다”며 “금융산업에 좀 더 경쟁적 환경을 만들고 유착들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법 집행을 해야 하는데 관치금융 역사가 오래됐기 때문에 많은 이해당사자들이 걸려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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