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26일 세종연구소 연구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 하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
북한의 조선노동당과 항일무장투쟁 연구자라면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을 비껴갈 수 없습니다. 북중 관계사 특히 국공내전 시기 북중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판자·반대자들도 이 전 장관의 학문적 업적과 치열한 연구에 대해서는 인정합니다.
이 전 장관은 연구실을 넘어 노무현정부에서 통일·외교·안보 정책을 주도했고, 김대중정부와 문재인정부에서는 주요 조언자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대북포용정책 진영의 핵심 이론가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이달 말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에서 정년퇴임하는 그를 연구소 213호실에서 만났습니다. 1994년 9월 1일 첫 출근 이래, 공직 생활 4년을 뺀 지난 30년간 줄곧 그의 연구실이었습니다. 다음은 문답 요약입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26일 세종연구소 연구실에서 진행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 중, 직접 만든 북한 <노동신문> 스크랩북을 보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
-1990년대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할 때 부인과 함께 북한 <노동신문>을 8000매 복사했다고 들었습니다. =여기 그때 스크랩했던 게 있습니다. 제가 ‘조선로동당의 지도사상과 구조변화를 중심으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했어요. 절친 이희옥 후배(현 성균관대 교수)가 당시 한양대 중소연구소에 있었는데, 자기네 연구소 창고에 북한 <노동신문>이 쌓여있다고 알려주더라고요. 그래서 연구소 측에 창고를 다 정리해 주겠다고 제안해서 허락받은 뒤, 50만원 주고 제록스 복사기를 빌렸습니다. 한 달 걸려서 A3용지 8000매 정도 분량을 복사했고 스크랩북 50권을 만들기까지 총 6개월 정도 걸렸는데 이 과정이 꽤 공부가 됐던 것 같습니다.
-지독하게도 하셨네요(웃음).
=지독하다기보다는 좋아서 한 겁니다.(웃음) 재밌으니까요. 우리 아이들한테도 그렇고 젊은 후배들이나 학생들에게도 ‘재밌는 것을 해라’, ‘재미있어서 하는 자를 이길 자는 없다’고 지금도 이야기를 합니다.
-북한 노동당 사람들이 “이종석이 우리보다 노동당을 더 잘 안다”고 했다는 말이 있더군요.
=제가 그런 말을 직접 들은 적은 없는데,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에피소드는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북한 방문 때 조선혁명박물관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전시물을 보다가 저건 팩트가 틀렸다고 하니까 가만히 적더라고요.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젊었을 때 만주 장춘 카륜에서 활동했다고 크게 강조하는데, 제가 사실확인을 위해 카륜에 김 주석이 머물렀다는 집을 현장답사한 적이 있습니다. 북쪽 인사들은 1970년대 초반에 한 번 와 본 게 전부라는데 북측에 서까래도 무너지고 전혀 관리가 안 돼 있더라고 알려주고 나중에 그 현장 사진을 정부 통해 전달해 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쌓이면서, 북쪽이 자기 역사에 대해서 저에게 함부로 말을 못 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과장하고 신비화하는 게 저한테는 먹히지 않는 거죠. 북한 연구자들은 자료 때문에 골치를 썩는데 제 경험 등을 모아서 ‘자료 찾아 삼만리’식의 책을 써보려 합니다. 후배들이 제일 재촉하는 책입니다.
-학문적으로 북한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이 있다면.
=1982년에 복학해서 사회과학 공부를 하던 때였는데 학교 사회과학연구소에서 통일 관련 논문을 공모한 적이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일고찰’이라는 제목으로 응모했는데, 석사나 박사과정자를 제치고 1등을 했습니다. 저는 학부생이었기 때문에 ‘내가 이런 걸 할 줄 아나 보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북한은 미지의 세계였기 때문에 관련 글을 보다 보면 흥분이 되고 그랬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금성사에 취직해 2년 반 동안 잘 다녔는데, 아내도 공부를 권하고 해서 87년에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한반도 정치’를 공부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한반도 전체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을 공부해야겠다 싶었습니다. 북한을 공부하다 보니, 김일성과 빨치산을 모르면 안 되겠구나 싶었고 그때 쓴 석사 논문이 ‘북한 지도집단의 항일무장 투쟁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연구’입니다. 이 논문이 좀 화제가 돼서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한국에 와서 일부러 저를 찾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북한 공부를 하고 있으니 월북한 뒤에 아직 월남을 못 한 셈입니다.(웃음)
-학계에서는 조선노동당 연구와 북중 관계 특히, 국공내전 시기 북중 관계에 대한 연구가 학문적으로 높은 평가를 하고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조선노동당에 대한 연구가 과분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조선노동당 연구는 오래되기는 했는데 여전히 노동당이 구조적으로 크게 변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1962년 북한과 중국 간 국경획정 문제도 제 나름으로는 깊게 들여다봤습니다.
-퇴임 이후에는 어떻게 활동하십니까.
=앞으로 2년은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으로 있게 됩니다. 후배들은 퇴임 기념 강연을 하자고 하는데, 우선 책부터 낼 생각입니다. 4권 정도 구상하고 있는데 우선 내년 봄쯤에 창작과 비평사에서 북중 관계사를 총괄하는 책을 낼 계획이고 또 한반도 국제 관계사라는 내용으로 북중 관계, 북미 관계, 한미 관계의 특징을 담아 보려고 합니다. 저같은 연구자들은 정년퇴임해도 연구 장소가 달라지는 것이지 직업이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퇴임하면서 이런저런 신경 쓸 일이 줄어들면서 집중력은 훨씬 높아지는 것 같아요.(웃음)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26일 세종연구소 연구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북한 당규약 바뀌었는데도 남조선혁명론 살아있다? 이제 그분들이 증거 내놔야"
-북한이 2021년 조선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 당 규약 중 ‘조선노동당의 당면 목적”을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과업 수행”에서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발전 실현”으로 바꿨습니다. 이를 계기로 “북한의 남조선혁명론이 사실상 소멸됐다”고 주장한 게 큰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데요.
=저는 그 이전부터 북한의 행동과 상황전개 과정을 보고 ‘남조선혁명론 폐기’를 이야기했습니다. 2021년 당규약 개정을 보고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그간 북한은 ‘우리민족제일주의’를 내걸어왔지만 김정은은 ‘우리국가제일주의’를 이야기합니다. 공산주의는 이미 체제 경쟁에서 실패했고 중국도 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여서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북한 사람들 만났을 때도 변화를 느꼈습니다. 1991년에 연길에서 제가 처음 북한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저를 포섭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1997년 이후에는 2인 1조가 아니면 저를 만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두려운 겁니다.
제 분석에 반대한 사람들은 조선노동당 규약이 그대로 있는데 무슨 얘기냐, 국가보안법 개폐 논쟁 때도 북한 노동당 규약이 그대로인데 왜 보안법에 손을 대려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규약이 바뀌었음에도 남조선혁명론이 살아있다고 한다면, 이제 그분들이 그 증거를 내놔야 합니다. 저로서는 이미 2010년 경에 북한이 남조선혁명론을 폐기했다는 결론을 내렸고, 2021년에 당 규약 개정은 그것을 증명한 것일 뿐입니다.
-공직 시절과 코로나19 기간을 제외하고 매년 북중 접경지대 답사를 계속했다고 들었습니다.
=연구자로서 현장을 확인하고 싶지만 북한은 그렇게 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공식 문헌을 보고 탈북자 인터뷰도 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답사를 위해 처음 북중접경지대를 간 건 1996년 3월이었습니다. 8박9일 일정으로 갔는데 답사단 누구는 중소기업 사장 명함 파고, 저는 상무 명함으로 갔어요.(웃음) 2018년까지 거의 매년 1, 2회씩 갔는데 처음 볼 때는 그저 농촌이지만 시간이 쌓고, 사진 등등 자료가 축적되면서 변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협동농장과 개인 텃밭에서 생산한 농작물을 비교해 보기 위해 최신형 망원경도 여러 대 샀습니다. 세종연구소는 이런 데 지원을 많이 해줬습니다.
-지금 윤석열정부는 중국이 북한 제재 뒷문을 열어놓고 북핵 문제에 대해 방기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반중정책의 명분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선 팩트가 맞지 않습니다. 대북제재 그 자체가 가능한 건, 북한 대외교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 때문입니다. 미국 등 서방은 이미 옛날부터 대북제재를 했기 때문에 뭘 더 할 게 없고, 남북 간에도 2010년 5·24조치로 제재할 게 없습니다. 중국이 제재에 동참했기 때문에 북한이 고통을 받은 겁니다. 그런데 2020년부터는 코로나19 국면이었고, 북한이 자체 봉쇄를 한 뒤에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의 미중갈등을 축으로 하는 신냉전 상황을 고려할 때, 만약 코로나 봉쇄가 풀려서 북중국경의 문이 다시 열리면 중국의 대북제재가 크게 이완될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북중 국경교류가 정상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의 대북제재 뒷문이 실제로 얼마나 열려있는지 시험대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중국이 추가적인 북한 제재에 반대하는 것은 맞지만, 중국이 북한 제재를 안 한다는 것은 아직 국경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팩트 자체가 틀립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북핵 문제 해결이 길을 잃었습니다. 그 이후 대북 포용론자들이 2018년부터 김정은에게 완전히 속았다는 주장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감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주장입니다. 속았다, 실패했다 이런 말이 대표적인데요. 김정은은 패턴이 명료합니다. 늘 조건부입니다. 늘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면’이라는 단서가 있었습니다. 김정은은 2018년에 선제적으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중단했습니다. 누가 상상이나 했던 일입니까. 2019년 6월 판문점 선언에서도 김정은은 상당 시간을 할애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2021년에 미국 바이든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제 더는 이렇게 못 하겠다’고 했잖아요? 트럼프는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한 조치를 취하겠다 하고는 안 했어요. 김대중 대통령 말을 빌리면, 상인적 감각은 뛰어난데, 서생적 감각은 없는 겁니다.
김정은이 조건부로 연변 핵시설을 폐기시키겠다고 했어요. 이건 엄청난 건데, 그걸 김정은에게 약속받은 사람이 문재인 전 대통령 아닙니까. 트럼프는 장사꾼이니 자기가 받은 것이 아니라서 껌값 취급했어요. 문 전 대통령도 미국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받았지만 결국 못했습니다. 더욱 강하게 밀고 나갔어야 합니다.
어떤 위대한 실험을 성공했다고 칩시다, 그 성공 이전의 실험들은 다 실패일까요? 결과적으로 성취를 얻지 못했지만 한반도 평화를 향한 노력들이 축적돼 한국경제의 발전과 국민의 삶의 향상, 국가위상의 제고에 크게 기여해온 것 아닐까요? 지난 30년 기간 중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율을 기록했고, 포용정책으로 국민의 삶은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했습니다. 세계인들이 대한민국을 글로벌선도국가로 인식하게 된 것은 시기적으로 대체로 문재인정부 때 부터였습니다. 글로벌선도국가의 이미지에는 그 지역 평화를 주도하는 노력도 포함됩니다.남북 간 분쟁이 있었다면 가능한 일입니까.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26일 세종연구소 연구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외교안보 결국 중요한 건 자기중심성…머리통 터져도 자기 주장해야 절충점 만들어져"
-윤석열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미국 중심 가치동맹’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지구 전체가 자유민주주의라면 좋겠지만, 다른 삶의 양식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 각각은 상대를 파괴할 물리력도 가지고 있고요. 전통적으로 자신의 삶의 양식을 다른 나라에 투사하려 할 때 전쟁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국제사회의 규율이고 평화이고, 공동번영입니다.
그런데 가치를 내세워서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이들과는 외교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거는 냉전 시기보다 더 후퇴한 겁니다. 가치를 공유한다는 것과 가치동맹은 다른 겁니다. 냉전 때도 이러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소련과도 대화하고 결국 미중 간에도 대화하고 교역합니다. 이 정부 사람들이 외교에서 자유를 가치로 내세우던데, 초강대국인 미국도 가치를 앞세우지만 늘 일관되게 가치외교를 하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극심하게 탄압하는 데 미국이 왜 방관하거나 심지어 이스라엘 편을 듭니까? 외교의 목표는 결국 국익 증진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6·25 기념사를 비롯해 여러 자리에서 “강력한 힘만이 진정한 평화를 보장한다”는 인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가장 훌륭한 안보는 싸울 필요가 없게 만드는 것 아닙니까. 강력한 국방도 해야 하지만 당연히 적대성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합니다. 안보는 실사구시가 기본 아닙니까. "무는 개는 짖지 않는다"고 했는데, 지금 정부는 국민들에게 들으라고 외치는 식의 전시성 보여주기 안보, 농성안보, 외눈박이 안보를 하고 있습니다. 대화 채널조차 없는 안보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적대 세력과 대화 채널도 없는 강력한 안보가 어떻게 가능합니까.
-역대 한국 정부들의 외교안보정책과 그 운용의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결국 외교안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중심성입니다. 우리 국익을 위해서라면 머리통이 터져도 주장할 것은 주장해야 절충점이 찾아지고 균형점이 만들어집니다.
대담·정리=황방열·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