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글로벌 헤지펀드에게 패소하는 판결이 있었습니다. 2015년에 있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벌어진 일 때문입니다.
2015년 삼성은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게 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제일모직의 몸값을 비싸게 매기고 삼성물산은 헐값으로 평가했습니다. 제일모직의 3배 규모 자산가치를 지닌 삼성물산을, 제일모직의 3분의 1 값으로 매긴 놀라운 합병비율이 산출된 것은, 제일모직 지분을 보유한 이재용 당시 삼성 부회장에게 합병법인의 지분을 최대한 많이 안겨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연히 삼성물산 주주들이 강하게 반발해 찬반이 박빙을 이뤘으나 박근혜 정부가 삼성물산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을 동원해 합병안에 찬성, 합병이 성사됐습니다.
당시 삼성물산 주주였던 헤지펀드 엘리엇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합병 후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입니다. 긴 싸움 끝에 지난달 20일 국제상설중재판소(PCA)는 엘리엇에게 5358만6931달러, 700억원에 육박하는 돈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삼성이 엘리엇에게 이면계약으로 700억원 이상을 챙겨줬다는 사실이 지난해 알려졌습니다. 또 복지부의 ‘엘리엇 ISDS 소송 관련 예산내역’을 통해 우리 정부가 엘리엇과의 소송 과정에서 156억원을 썼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보다 더 큰 피해는 삼성물산 주주들이 입은 손실입니다. 이재용 회장 등 제일모직 주주들이 얻은 이익은 삼성물산 주주들에게서 가져간 것이니까요.
배상액과 소송비용은 모두 정부 예산에서 지출됩니다. 삼성물산 주주들은 손실도 입고 내가 낸 세금에서 배상액까지 해결해주게 됐습니다. 정부와 당시 삼성물산 주주들이 삼성 측에 구상권을 청구해야 마땅한 일 같은데, 엘리엇처럼 소송을 벌일 수도 없는 일반 주주들은 피해를 복구할 방법이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내린 결정 하나로 인해 날아간 피해액이 얼마나 되는 걸까요? 합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그리고 이재용 회장은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사면과 가석방으로 모두 풀려났습니다.
정부가 주식 작전세력이 벌어들인 부당이익을 2배로 환수하겠다고 합니다. 작전세력이나 기업들의 대주주 몰아주기나 주주 이익을 빼앗는다는 사실은 다를 게 없는데 여기엔 손댈 생각이 없는가 봅니다.
대주주에게 이익을 몰아주는 합병과 분할은 지금도 너무 태연하게 행해집니다. CJ CGV가 진행 중인 유상증자만 해도, 최대주주인 CJ가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을 현물출자한 것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돈 필요한 기업이 증자를 하는데 현금 대신 자회사 지분을 내놓은 것도 못마땅한데, 더구나 비상장기업의 몸값을 너무 높게 평가했다는 지적입니다. 특정인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비상장기업에 대한 가치평가를 고무줄 늘이듯 합니다.
주주 이익을 훼손하는 결정에 거수기 노릇을 하는 이사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법부터 뜯어고쳐야 합니다. ESG 경영을 한다지만 글로벌 스탠다드 쫓아가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