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반세기 뱅커, '라응찬'의 퇴장

'고졸 신화' 신한 창업공신
후계구도, 정쟁에 휘말리며 퇴진

입력 : 2010-10-30 오후 3:39:43
[뉴스토마토 황인표기자] "신한이 라응찬이고 라응찬이 신한이었다"
 
금융계 거목인 라응찬 신한지주(055550) 회장이 결국 51년간의 '뱅커'를 접었다.
 
라 회장은 30일 열린 신한금융 이사회에서 공식 사퇴했다. 전성빈 이사회 의장은 이사회 직후 가진 브리핑에서 "신한금융은 류시열 이사 직무대행으로 가고 특별위원회도 설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금융 본사에서 라 회장은 기자들에게 말을 아끼며 급하게 차에 올랐다. 라 회장은 "직원들에게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말만 남겼다.
 
◇ 고졸 성공 신화의 몰락
 
형식은 자진사퇴지만 내용는 정반대다. 차명계좌 개설 등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가 드러나면서 다음주 금융감독원의 중징계를 앞두고 있다. 중징계를 받으면 법적으로 금융회사의 임원직을 유지할 수 없다. 끌려 내려가기 보다는 '용퇴'하겠다는 뜻이다.
 
라 회장은 국내 은행권 판도를 흔들며 '신한'을 최고의 금융회사로 키웠다. ‘조상제한서(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로 불리는 5개 시중은행 체제가 굳건했을 당시 1982년 재일 교포들의 돈을 모아 점포 3개로 신한을 시작했다. 당시 신상훈 사장 등 창립 멤버들과 함께 직접 거리로 나와 유인물을 돌리고 시장 점포를 돌아다닌 일화도 유명하다.
 
2002년 굿모닝증권, 2003년 조흥은행, 2006년 LG카드(現 신한카드)를 인수하면서 신한을 은행 대 비은행 부문 포트폴리오가 가장 뛰어난 회사를 만들었다. 신한금융은 비은행 부문의 순익이 약 절반에 이르고 직원 1인당 생산성이 국내 금융회사 중 최고다.
 
금융권 '최장수 CEO'라는 라 회장의 위치에 별다른 이의가 생기지 않은 이유다. 1991년 신한은행장 이후 3연임, 이어 지주회사 회장을 2001년부터 4연임했다. "신한이 라응찬이고 라응찬이 신한이었다"는 말이 나올만 했다.
 
경북 상주의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선린상고 야간부를 졸업하고 ‘고졸 성공'에 이어 '신한웨이(Shinhan Way) 신화’를 써갔던 라 회장은 결국 쓸쓸히 퇴장하고 말았다.
 
◇사면초가 라 회장
 
하지만 라 회장은 자신이 날린 '부메랑'을 맞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9월 초 신상훈 지주사장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시작된 신한 사태는 결국 정치권으로 펴졌다.
 
민주당에서 라 회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50억원을 전달하면서 차명계좌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른바 '영포라인' 문제까지 제기되면서 파문은 더 커졌다.
 
여기에 이희건 전 명예회장의 고문료를 신 사장 뿐만 아니라 라 회장 역시 빼돌려 썼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신한사태는 '진흙탕 싸움'이 돼 버렸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그동안 절대 지지 세력이었던 재일교포들 마저 사퇴를 요구했다. 한 때의 우군이 모두 적군이 된 것이다.
 
신상훈 신한지주 사장 고소로 시작된 신한사태는 결국 라 회장의 '자진사퇴'로 일단락됐다.
 
◇ 라응찬 약력
 
▲ 1938년 경북 상주 출생
▲ 1959년 선린상고 졸업
▲ 1959년 농업은행(현 농협) 입사
▲ 1968년 대구은행 지점장 비서실장
▲ 1977년 제일투자금융 이사, 상무
▲ 1982년 신한은행 상무, 전문
▲ 1991년 신한은행장(3연임)
▲ 1999년 신한은행 부회장
▲ 2001년 신한금융 회장(4연임)
▲ 2010년 10월 신한금융 회장직 사퇴
 
뉴스토마토 황인표 기자 hwangip@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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