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2분18초 곡이 설명한 '펜타포트'…"넝쿨 같은 문화의 장"

간판출연진 엘르가든 필두로 김윤아·장기하 등 무대 달궈
18년쨰 국내 대표 록 축제…지난해 이어 역대 기록 나오나

입력 : 2023-08-05 오후 1:33:2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소원을 빌어볼게요. 당신의 손을 옆의 누군가 잡아주길."
 
4일 인천 인천시 연수구 송도 달빛축제공원.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첫 날 메인스테이지 마지막 무대. 간판출연진(헤드라이너)인 일본 록 밴드 엘르가든 보컬 호소미 타케시가 대단원인 앙코르 직전 한국어로 말하자, 수만 관중들이 뒤로 서서히 물러나며 그리기 시작한 거대한 원 모양.
 
2000년대 초반 국내 TV CF로도 쓰여 유명한 이들의 대표곡 'Make a Wish'가 원곡의 반주를 도려낸 채, 호소미와 관객들의 벌스 구간 제창 만으로도 물결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가온 지옥의 코러스 구간. 드럼과 베이스, 일렉기타 삼합이 으르렁 거리는 간주로 들어갈 때, 원 중심을 향해 '태풍의 눈'처럼 휘몰아치는 관객들과 깃발들.
 
4일 인천 인천시 연수구 송도 달빛축제공원.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첫 날 메인스테이지 간판출연진(헤드라이너)인 일본 록 밴드 엘르가든의 마지막 무대. 사진=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이날 이 2분 18초 짜리 곡 하나를 현장에서 몸을 부대끼며 들어봤다면, 올해 18년째인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역사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엘르가든 무대 중간 중간 수천명이 바닥에 앉아 노를 젓는 듯한 플래시몹을 하며 놀고, 둥근 원을 그리면서 뛰어노는 관경들이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음악이란, 문화란, 록이란 이렇게 넝쿨처럼 뒤엉키는 것입니다.
 
펜타포트는 1999년 '트라이포트 페스티벌'에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2006년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로 명칭을 바꾼 후 18년째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딥퍼플, 뮤즈, 트레비스, 언더월드, 콘, 들국화, 서태지 등 1200팀 이상을 무대에 세웠고 약 100여만명의 누적관객을 동원한 국내 록페의 자존심으로 꼽힙니다. 힙합, EDM이 득세하는 시대에 열악한 록 시장의 마지막 '구원투수' 같은 역할을 해온 국내 대표 간판 록 축제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비대면으로 열어오고 지난해 엔데믹을 맞아 역대 최다 관객인 13만명을 끌어모았습니다. 대체로 하루 3만 명이 넘는 관객이 행사장을 찾는데 지난해에는 첫날 관객 만으로 2015년 가장 뜨거웠던 '서태지(하루 5만명 동원) 펜타포트'를 넘어섰습니다. 올해 역시 해외 라인업이 보강돼 작년의 흥행 기록을 재차 깰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4일 인천 인천시 연수구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펜타포트 장기하 무대. 사진=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엘르가든의 무대 외에도 첫날 서브 무대의 여러 팀들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이 길이 내 길인지 니 길인지 길이기는 길인지 지름길인지 돌아 돌아 돌아 돌아 돌아가는 길인지는 나도 몰라 / '그대의 머리 위로 뛰어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너처럼 아무 것도 몰라"
 
서태지의 '환상 속의 그대' 샘플링의 '그건 니 생각이고'가 흘러나오던 장기하 무대는 우리 말이 실타래처럼 얼키고설키는 곡예 수준. 장기하의 음악들은 메시지가 록입니다. '가~ 만 있음 되는데/ 자꾸만 뭘그리 할라 그래' 원곡의 로우파이 음색들이 펜타포트 무대 위에선 밴드 사운드를 입고 꿈틀댔습니다. 가사와는 달리, '가만 있지 않고' 이어가는 장기하의 로봇 춤에 객석은 웃음 바다가 됐습니다.
 
"사랑한다고 힘들었던 적 없어? 모든 게 좋은 건 아니잖아. 왜 그래 우리 다 그런 사랑해봤잖아. 나만 좋어하는 것 같은 그 위험한 기분, 그거 다 느껴봤잖아?"(김윤아) 자우림의 김윤아가 객석과 대화를 시도한 뒤, 꺼내든 곡 '증오는 나의 힘'. 이날 메인 무대 솔로로 나선 김윤아는 연극 스타일의 색다른 연출로 펜타포트 현장을 '셰익스피어의 대강당'처럼 만들었습니다. "사랑의 힘은 생각보다 위대하지 않을지 몰라요. 행복이란 아름다운 것. 우리는 유리처럼 나약해."
 
4일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자우림의 김윤아. 사진=펜타포트락페스티벌
 
델리스파이스, 언니네이발관과 함께 홍대 모던록 밴드 1세대로 꼽히는 장수밴드이자 지난해 15년 만에 재결성한 '마이언트메리'를 비롯해 백예린의 밴드 '더발룬티어스', 일본 인디 팝 밴드 '키린지' 등도 무대에 올랐습니다. 마지막 무대는 1세대 펑크록 밴드 노브레인이 '비와 당신', '넌 내게 반했어', '마도로스 킴' 등의 대표곡들로 록 팬들을 달궜습니다.
 
4일 펜타포트 무대에 오른 백예린의 밴드 '더발룬티어스'. 사진=펜타포트락페스티벌
 
6일에는 일본 록 밴드 '오토보크비버'을 필두로 최근 국내에서 해외로 진출하며 부상하는 록 밴드 '실리카겔', 1세대 인디 밴드 '검정치마', 전자음악 밴드 '이디오테잎', 미국 포스트펑크록 밴드 '스트록스', 뉴진스의 프로듀서 '250' 등이 참여합니다. 마지막 날에는 이날치, 체리필터, 카더가든, 새소년, 산울림의 김창완 밴드 등이 무대에 섭니다.
 
4일 인천 인천시 연수구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사진=펜타포트락페스티벌
 
인천 송도=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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