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보험사들이 자기부담금이 높은 4세대 실손의료보험(실손)의 틈새를 노리는 보험상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는데요. 의료비를 매년 정액 보장하고 비급여 진료까지 보장하기 때문에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다만 4세대 실손을 대체하는 보험상품이 쏟아지면서 도덕적 해이를 막겠다는 실손 전환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생명보험사들과 손해보험사들은 실손보험 사각지대를 메우는 인보험을 내놓고 있는데요. 4세대 실손에서 높아진 자기부담금 부담을 줄이거나 실손 혜택이 없는 질병을 보장하는 식입니다.
4세대 실손은 1~3세대 실손 운영을 통해 발생한 보험사의 만성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21년 7월 출시됐는데요. 비급여 과잉진료와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자기부담률이 높게 설계된 게 특징입니다. 1세대 실손의 자기부담률은 0%, 2세대 실손의 자기부담률은 10~20%입니다. 이에 반해 4세대 실손의 자기부담률은 급여 20%, 비급여 30%입니다. 재가입 주기도 기존 1~3세대 15년에서 5년으로 줄었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4세대 실손으로 전환하면서 자기부담금이 높아지다보니 인보험에서 이를 커버하기 위한 새로운 담보가 탑재되는 게 요즘 생손보 불문 보험상품 추세"라며 "연간 쓴 의료비를 정해진 금액으로 보장하고 해가 바뀌면 지급한 보험금이 다시 리셋되는 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실손은 갱신 시 보험료가 인상되지만 해당 상품들은 보험료가 인상되지 않는 점도 인기 요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예컨대 DB손해보험의 '나에게 맞춘 간편보험'은 연간 본인부담 급여 의료비 총액에 따라 보험금을 정액 지급합니다. 담보에 따라 다르지만 연간 의료비를 100만원 이상 썼다면 100만원을 보상하고 1000만원 이상 쓰면 1000만원을 지급하는 식입니다. 연 기준 정액 보장이기 때문에 해가 바뀌면 똑같은 금액을 다시 보장받습니다.
지난달 출시된 NH농협생명 '병원비든든 NH의료비보장보험'은 출시 일주일 만에 판매건수 5000건을 돌파하며 인기를 얻었습니다. 질병코드, 수술 여부에 관계없이 급여의료 본인부담금을 보장하는 건강보험으로 보장금액이 리필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보험금 지급 후 소멸되는 기존 건강보험과는 다르게 매년 보장금액이 새롭게 리필돼 최초가입시점과 동일한 기준으로 보장금액이 복원됩니다.
실손에서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진료를 보장하는 상품도 늘고 있습니다. 주로 임신·출산관련 진료, 요실금, 정신질환, 선천성 뇌질환, 한방, 치과, 코로나19 진료에 대한 의료비를 보장하는 식입니다.
특히 지난달 DB손보가 출시한 '장기요양 실손보장보험'은 실손에서 보장하지 않는 요양원 및 방문요양(재가급여) 서비스까지 보장 한도 내에서 실비로 다달이 지급받을 수 있습니다. 장기요양 1~5등급을 받고 요양원 또는 방문요양 서비스를 이용할 때 발생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 급여 자기부담금과 비급여 부분을 보장해 주는데요. 매월 요양원 등은 70만원, 방문요양 서비스 등은 30만원 한도입니다. 기존 요양 관련 보험은 장기요양 등급에 따라 일회성 진단금을 지급하는 데 그쳤지만 요양원이나 방문요양 비용을 자기부담금없이 매달 보장하는 상품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삼성화재의 '더블업 마이라이프'도 연간 급여 항목 중 본인 부담 의료비를 보장하는데요. 특히 산정특례 항목을 보장하는 담보가 탑재된 게 특징입니다.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희귀질환, 중증 난치병 등은 정부에서 산정특례제도를 통해 의료비의 95%를 지원하고 5%만 환자가 본인 부담하도록 돼 있는데요. 해당 질환으로 진단을 받으면 정액을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보험업계는 실손이 없는 고객에게 실손 대신 해당 상품들을 권하고 실손이 있더라도 4세대 실손이 메우지 못하는 부분을 커버하기 위해 해당 상품을 권한다는 입장이지만,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실손이 진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건강보험의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실손이 등장했지만 과잉진료가 시작되면서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 실손이 진화했음에도 다시 실손의 빈틈을 메우는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다"며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실손의 전철을 밟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이미지=연합뉴스 제공)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