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군사합의, 5년 만에 폐기 기로

신원식 국방장관 후보자 "남북 군사합의 파기 대비해야"
김도균 전 정책관 "접경지역 충돌·긴장 다시 경험" 반박

입력 : 2023-09-14 오전 6:00:00
지난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018년 9월19일 평양공동선언이 5주년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당시 선언의 핵심이었던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9·19 남북군사합의)가 존폐 위기에 놓였습니다. 윤석열정부는 9·19 군사합의서의 실효성을 문제 삼으며 효력정지 혹은 파기를 고려하고 있는데,  남북 사이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신원식 의원 내정, 효력정지·파기 눈 앞으로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12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9·19 남북군사합의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열린 통일연구원 통일정책포럼에 보낸 서면 기조발표에서 9?19 남북군사합의로 우리 안보태세가 와해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 군의 전선지역 정보감시능력이 심각하게 훼손됐고 적 지하시설 파괴능력 또한 약화됐다고 지적한 신 의원은 북한의 지속적인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과 파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대통령실 약식회견(도어스테핑)에서 9·19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거론하며 "대응 방안을 차근차근 준비해나가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 정부는 9.19 군사합의 파기까지 포함한 대응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북한의 무인기가 지난해 12월 남한 상공을 침투하자 윤 대통령은 연초에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에 추가 핵실험을 지원할 수 있는 활동 징후가 계속해서 관측되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IAEA 정기이사회 개막 성명에서 "평안북도 영변 핵시설에서 활동이 계속되고 있으며, 시설 내 여러 곳에서 건설 활동이 증가하는 것이 관찰됐다"고 밝혔습니다.
 
윤석열정부가 9·19 군사합의 파기를 거론하는 신 의원을 국방부 장관에 내정하고 북한이 추가 핵실험 징후를 보이면서, 지난 1년간 검토에 불과했던 9·19 군사합의가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구도에 더해 실제 파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실제로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이윤식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이 7차 핵실험이나 고강도 군사도발을 벌이는 등 확실한 명분을 제공했을 때 그 동력으로 폐기에 나서는 것이 적합하다"고 주장했습니다.
 
2018년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북한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선제적 파기, 북한에 기회?빌미 제공"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군사문제였습니다. 남북군사합의서에는 실질적 군사합의가 5개조 20개항으로 구성됐으며 △1조 적대행위의 전면 중지 △2조 비무장 지대의 평화지대화 △3조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의 평화수역 조성 △4조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군사적 보장 △5조 군사적 신뢰구축과 합의 이행에 관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2022년도 국방백서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7년 사이 북한의 국지도발은 총 237건이었는데, 군사합의 이후인 2018년 0건, 2019년 0건, 2020년 1건, 2021년 0건, 2022년 1건으로 남북 간 긴장감이 완화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남북관계는 동력을 잃었고, 판문점선언 3주년이 되기 전인 2020년 6월 16일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습니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북한은 거듭해서 핵·미사일 위협을 고도화했고,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은 준군사동맹 수준으로 격상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북중러 결속이 강화되면서 동북아 갈등이 커지는 모양새입니다.
 
그럼에도 9·19 군사합의의 효력정지나 파기를 섣부르게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반론이 나옵니다. 
 
5년 전 9·19 남북군사합의 체결 당시 국방부 대북정책관으로 핵심 역할을 한 김도균 전 수도방위사령관은 <뉴스토마토>와 한 통화에서 "신원식 후보자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도 9·19 군사합의 폐기를 꾸준히 주장해왔기 때문에 (현 정부에서) 파기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면서 "9·19 군사합의를 폐기하는 순간 접경지역은 과거 상태의 수많은 충돌과 갈등을 다시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김 사령관은 "9·19 군사합의라는 것이 남북 정상이 직접 서명한 문서나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선제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합의서를 깰 수는 없는 것“이라며 ”남북 사이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나마 9·19 군사합의가 유효하기 때문에 지난 5년 동안 남북 간에 지상·해상·공중에서 안정적으로 관리가 된 것"이라며 "만약에 군사합의를 파기한다면 북한에 도발의 기회와 빌미를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9·19 군사합의가 우리나라의 감시능력과 타격 능력을 약화 시켰다는 정부·여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완충지역을 조금 넓혔다고 해서 정보감시능력이 약화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라며 "남북의 국방력 차이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우리의 정찰 감시 수단은 첨단화 돼 있어 오히려 북한이 까막눈이 된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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