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삼성·LG 줄세운 애플의 정합성

입력 : 2023-09-20 오후 12:05:18
애플은 글로벌 협력사에게 2030년까지 탄소제로 달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대외적으로 홍보해 애플의 브랜드가치를 높입니다. 협력사 중엔 국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삼성전기, LG이노텍, 포스코 등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애플이 강제한 것은 아닙니다. 애플 공급망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기업들이 선택했습니다.
 
애플이 갑이라 가능하기에 반강제성은 띱니다. 그렇게 탄소제로 달성에 필요한 환경비용은 삼성, LG 같은 부품 제조사가 집니다. 공은 그들에게 있으나 스포트라이트는 애플을 비춥니다. 그런 면에서 애플이 얌체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폄하하고 싶진 않습니다. 애플이 하는 게 인류에 필요한 역할이니까요. 애플이 그런 전략을 쓰지 않았다면 부품사들이 먼저 나섰으리라 상상하긴 어렵습니다.
 
국가 경영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가, 대통령이 개혁을 결단하지 않으면 기업들이 바꾸지 않는 여러 폐단과 문제들이 있습니다. 대통령을 국민이 뽑으니, 근본적으로는 국민이 결단해야 할 과제입니다.
 
잔뜩 미룬 과제 속에 방학이 끝나 가듯이 일종의 회피심리가 만연합니다. 요즘 MZ세대가 추구하는 욜로라이프가 그 중 하나입니다. 저출산은 그 파생 형태입니다. 자식을 낳은 부모가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도 걱정하게 마련입니다. 인류적 과제도 후손이 있는 부모세대에게 더 무거운 책임감을 안깁니다. 반대로 출산을 거부한 세대는 나와 현재가 아닌 인류과제가 부차적일 수 있습니다.
 
머스크는 인류가 나아갈 목표를 제시할 필요성을 느꼈다며 스페이스X 등 우주 이전을 기업 비전으로 제시했습니다. 애플처럼 머스크도 가치 지향적 프로젝트 일면에 상업성이 내포돼 있습니다. 단적으로, 그의 우주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지구가 망해가는 게 유리합니다. 지구를 떠날 위기가 없다면 서둘러 우주에 돈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눈여겨 볼 것은 애플, 테슬라 같은 선진기업이 인류적 과제에 집중하는 점입니다. 명품 정도의 사치품은 아니지만 그들이 다루는 제품은 소비재이며 기술보다 브랜드가치 향상이 판매이윤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반면 부품 제조사는 환경성과가 브랜드가치로 이어지는 사회적 인식 면이 약합니다. 정작 환경 노력 주체인 부품 제조사가 대우받지 못하는 점에 억울하겠지만, 완성품 기업이 소비심리를 분석하고자 인류과제에 신경쓰는 모습은 다행스런 일입니다.
 
미국 자동차 노조 파업은 이와 비슷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노조는 임금인상과 고용보장을 요구합니다. 이런 단체행동 원인은 전기차 전환에 따라 인력감축이 예견돼서입니다. 그 민심을 이용해 트럼프는 IRA 폐지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춰 일자리를 보장하겠다는 취지입니다. 표심 잡기엔 유리하겠지만 인류과제를 미루는 행위입니다.
 
국내에선 원전을 두고 탄소중립 정책이 오락가락했습니다. 신재생과 원전은 별개이며 탄소중립을 위해 원전을 이용할지 아직 글로벌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 속에 기후변화 문제를 몸소 겪는 유럽은 역내 기업들이 우리보다 더 친환경적으로 변했습니다. 환경비용을 감수하면서요. 이제 유럽은 CBAM으로 역내 기업이 차별받지 않도록 수입제품에 환경비용을 부과하려 합니다. 수출에 의존하는 국내 경제가 기후변화대책을 늦추면 시장에서 밀려날 염려도 커졌습니다. 애플, 테슬라가 비록 상업적이라도 바람직한 방향을 유도하고 있듯이 우리도 산업과 정치 분야에서 지혜로운 역할을 해주길 기대해 봅니다.
 
이재영 산업1부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이재영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