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두번에 걸쳐 생활가전기업 쿠쿠(
쿠쿠홀딩스(192400))의 대리점주 집단계약해지에 대해 다뤘습니다. 이에 관해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관련 질문을 전달하자, 대리점 계약을 해지한 것은 정당한 근거에 따른 회사의 사업상 전략이라는 답변과 함께 올해 3월경 나온 울산지방법원의 지위보전 가처분신청의 판결로 입장을 갈음한다고 전해왔습니다. 짧게는 15년, 길게는 25년 가량 함께한 대리점들을 그렇게 한꺼번에 정리해야 할 '사업상 전략'이라는 것이 궁금했습니다.
그 전략이 예전에 비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고자 전국의 대리점 및 직영센터 개수 추이에 대해서도 문의했습니다. 역시 "밝힐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센터 개수 변화에 대한 데이터가 있었으면 회사 전략의 방향을 좀 더 구체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업계에서도 흔히 보기 어려운 집단 계약해지 건만으로도 쿠쿠가 대리점을 점차 줄이고, 전국적으로 본사 직영 서비스 체제를 확립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점은 어렵지 않게 유추해볼 수 있긴 하지만요.
기사가 나간 뒤 쿠쿠에서는 이를 의식하기라도 한 듯 소상공인과 상생을 위한 B2B(기업간 거래)사업을 확장한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습니다.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쿠쿠와 직접 연관이 없는, '협회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소상공인'을 챙기기에 앞서 회사의 성장과 발전에 이바지한 대리점주들과 상생을 고민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요.
계약해지를 당했던 이들 가운데는
LG전자(066570)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으로 전기밥솥을 공급하던 시절에서 벗어나 쿠쿠라는 이름을 내세워 자체 밥솥 사업을 이제 막 시작하던 시절부터 동고동락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쿠쿠라는 이름이 시장에 낯설던 시기, 회사를 믿고 서비스센터를 열어 소비자를 상대하던 '최전방 수비수'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디에 가나 균일하고 표준화된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영 서비스센터를 세우려는 본사의 전략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리점주 활동을 했던 이들의 지점이 주로 인구가 집적돼 있는 곳, 본사 입장에선 영업·사업적으로 유리한 곳에 위치해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해당 대리점주들이 한 곳에서 수십년 동안 자리 잡고 이른바 '동네장사'를 하며 그간 고객과 쌓아나간 신뢰가 깡그리 무시당한 듯해 씁쓸합니다. 이들이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이점도 분명히 존재할텐데 말이죠.
동네에서 오가다 보는 친근한 고객들에게 간혹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인심을 살 수도 있습니다. 얼굴을 아는 고객들이니 과잉 수리로 바가지를 씌울 수도 없습니다. 소비자는 이를 통해 쿠쿠라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감을 얻을 것이고, 이는 '밥솥은 역시 쿠쿠'라는 인식과 함께 재구매라는 '선순환'을 가져올 것입니다. 대리점의 동네 장사가 본사의 성장과 무관치 않다는 얘기입니다.
밥솥 시장 1위 기업답게 쿠쿠가 대리점주들에게도 '1위의 품격'을 발휘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올해 초 계약해지된 11곳의 대리점과는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통해 다툴 사안이 남았다 치더라도, 대리점주협의회 활동을 했던 나머지 9개 지점만큼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계약이 해지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쿠쿠에 1위의 품격을 기대합니다.
이보라 중기팀장(bora11@etomato.com)